조혜정 기자.
12월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해마다 듣지만 반갑고 흥겹다. 국회도 12월만 되면 캐럴처럼 반복하는 노래가 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반갑지도 흥겹지도 않다.
가사는 “○○○법 처리를 막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해줄 수 없다”다. ‘○○○법’ 자리는 2004년 국가보안법·신문법·과거사법·사립학교법 등 4대 입법에서 지난해와 올해 사학법으로 바뀌었다.
‘결연한 의지’가 담긴 노래를 부르며 예산안 처리시한을 꼬박꼬박 어기는 건 국회의 습관이 됐다. 1990년 이후 16년 동안 국회가 이 시한을 지킨 건 대통령 선거 때문에 국회를 일찍 끝낸 해를 빼면 딱 두 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4조는 ‘회기 연도 개시 30일 전에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국회는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국회의 ‘습관성 위헌송’이 반복되니 이를 질타하는 기사도 해마다 되풀이된다.
지난 8월29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 기한보다 일주일 늦은 12월9일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11월16일엔 양당 원내대표가 이를 재확인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문제로 정기국회가 파행을 겪은 탓에 예산안을 심의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양당 원내대표는 12월15일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기로 11월29일 다시 합의했다. 15일,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이 안 됐다는 이유로 ‘예상대로’ 이 합의를 어겼다.
그리고 기자는 지겨움과 민망함을 무릅쓰고 ‘내년부턴 이 노래 안 불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례행사 같은 기사를 쓴다. 그 노래, 모든 사람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정말 국회만 모르는 걸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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