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새해 인터뷰에서, 오귀환 <한겨레> 편집국장(가운데)이 올해 북핵 문제의 전망을 묻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올해에 북핵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대중 전 대통령 새해 인터뷰 = 통일·외교 분야
6자회담과 남북회담 “북-미관계 풀지 않으면 서로 손해…두 정상 일단 만나면 진전있어”
햇볕정책 흐려질까 “한나라당 집권한들 전쟁하겠나…인도적 지원·대화 할 수밖에…” -올해 북-미 관계와 6자회담을 전망하면서 ‘신중한 기대’를 표명하셨는데, 상대적으로 낙관적으로 보시는 이유가 뭔가요. =낙관한다기 보다는, 올해는 북한 핵문제가 가부간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잘못될 가능성도 있지만 또 풀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양면성이 있죠. 그런데 풀려갈 가능성이 지난 해보다 높다는 생각입니다. 이유는 서로 그럴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보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겼고, 부시 대통령도 지금 중동에서 저 모양인데 북한과 전쟁할 처지가 못되지 않습니까. 2년 후면 미국 대통령 선거인데 올해까지도 아무 것도 없이 넘어가면 자꾸 북한 사태가 악화되거든요. 그렇게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입장에서 볼 때도 올해는 풀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는가, 그 이외에는 딴길이 없지 않겠나 이런 생각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지금이 상한가입니다. 핵을 쏴서 힘을 보였고, 위력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고, 그러나 여기서 해결을 해야지 계속 밀고 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에는 나쁘게 되면 아주 나쁘게 되겠지만 극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상황 변화에 따라 한국전쟁 종전 선언까지 할 정도로 양보할 수 있을까요. =미국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군대를 빼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북한과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안심하고 빼내는 길이 되는 거니까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다든가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한 것이고, 또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를 해야죠. -지난달 열린 5차 2단계 6자회담에선 몇가지 교착 상태에 빠진 게 있었습니다.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선 북한과 미국이 각각 어떤 양보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간단해요.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돼요. 그리고 미국은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고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포함해서 경제적 제재를 해제해 줘야 해요. 미국만 그런 방향으로 결심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김일성 유훈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니까 (북한은) 핵 포기를 한다고 봐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미국이 해줬는데도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으면 그때는 중국도 가만히 안 있을 거고, 우리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세계가 가만히 안 있을 거에요. 북한 못 견뎌요. -북한 핵문제와 남북정상회담이란 두가지 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는 게 좋을까요. =남북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핵문제 얘기 안하고, 6자회담 문제 얘기 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하면서 그렇게 되면 미국이 이렇게 할 것이다 얘기도 해주고, 또 북한은 미국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우리 보고 뭘 믿고 포기하라고 하느냐 이런 얘기도 나올 것이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까요. =(노무현) 대통령도 물러나기 전에 정상회담을 해야 돼요. 나로부터 시작해서 재임하는 대통령마다 정상회담을 하면 다음 대통령도 하게 돼요. 그런데 여기서 걸려 버리면 맥이 끊어질 가능성도 있죠. -지난해 북한 방문을 하려다 잘 안됐지 않습니까. 올해 여러 여건이 갖춰진다면 방북하실 의향은 있으신지요. =나는 원칙적으로 남북 양쪽 정부가 바라면 가겠다는 원칙인데, 지금은 상황이 노 대통령 임기도 얼마 안 남아서 내가 가는 것보다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대화하는 게 더 당면한 문제로 등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한이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진지한 의사가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도 서울 답방을 해야 할 책임이 있고, 노 대통령과 대미 관계에 관한 협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경제적 지원도 요청할 수 있는 것이고, 남북 관계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여러 조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북한도 나쁠 것이 없죠. -정치적 여건에 따라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누가 집권하든 햇볕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한나라당도 걱정 안해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북한과 대화 하지 않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쟁을 하겠습니까.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어느 정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안할 수가 없을 것이고, 개성공단이라든가 이런 것도 철수시킬 수 없을 것이고, 남북간에 사람도 왕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반도 상황이 풀리는 쪽으로 갈 때,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해야될 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6자회담에서 푸는 것과 남북간에 푸는 것을 병행해야 하는데, 남북정상회담이 그런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2000년 북한에) 올라갈 때는 아무 것도 합의 없이 갔지만 (막상 만나니) 여기서 아무 것도 해결하지 않고 맨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되더라구요. 이번에도 (남북 정상이) 만나면 그렇게 돼요.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는 한-미간에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합의를 하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나는 군사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으나 작전권 환수 문제는 사실은 우리보다 미국이 세계전략을 바꾸면서 바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작전권 환수하지 말라고 반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 분들은 미국 가서 얘기해야 돼요.(웃음) 그대신 우리는 어떻게 미국이 한-미 방위조약을 철저히 지키면서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미국이) 틀림없이 (남한을) 지원하느냐, 북한이 지금 핵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미국의 핵우산이 우리에게 확고한 것이냐, 이런 것 등을 철저히 따지는 것이 우리가 그 문제를 처리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작전권을 갖게 되면 미국이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는 한발 빼는 결과가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북한과 긴장 완화도 될 수 있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0년 6월14일 밤 평양 목란관에서 남북 공동선언에 합의한 뒤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과 통일 문제를 고민해 오셨는데,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이 어떤 식으로 갔으면 좋겠는지, 꿈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째로 우리 민족이 통일할 수 있겠냐 통일이 필요하냐 이런 문제인데, 세계에서 단일 민족으로 통일국가를 1300년이나 유지한 나라는 거의 없어요. 우리가 분단된 것도 우리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2차대전 끝나고 소련과 미국이 멋대로 갈라 놓았잖아요. 다시 하나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반도 종단철도를 거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은 그렇게만 되면 내가 볼 때 세계에서 5, 6위까지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저력과 역량을 그렇게 크게 보시는 겁니까. =중국이란 나라가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나라인데, 우리는 중국한테 조공 바치고 그랬지만 동화되지 않고, 중국서 가져온 불교·유교를 우리것으로 재창조했습니다. 또 우리 국민들이 자기 힘으로 생명까지 바치면서 민주화를 했습니다. 중국은 아직 민주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비하해선 안됩니다. 남북만 합치면, 1+1이 5도 되고 6도 됩니다. 통일은 단순히 ‘우리의 소원’이라는 감상적, 민족적 정서만이 아니라 생존과 발전에 절대로 불가결한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 주변의 강국인데, 앞으로 중국과 미국이 서로의 관계를 매끄럽고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난번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너) 회장이 오셨길래 당신네 나라 강경파들이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고 군사적으로 제압하려고 하면, 그렇지 않아도 강한 중국의 군부가 득세해 군비를 확충할 것이고, 그래서 상당히 어려운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평화 속에서 경제 건설하고 잘 살려는 쪽으로 가는 걸 도와주면 어떻게 되느냐,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면 (미국의) 적이 될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같이 공존해가면서 평화 국면으로 가면, 중국이 (무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영국식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리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