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 여론조사
선거 5개월 남기고 비준 논란 불가피한데
주자따라 지역따라 찬반 뚜렷이 갈려…
주자따라 지역따라 찬반 뚜렷이 갈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내 정치지형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일정에 맞춰 ‘3월 말 타결-6월 말 체결’로 가는 이 협정이 12월 대통령 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정당과 대선 주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지역·세대·소득에 따라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까닭이다.
협상이 미국 일정에 맞춰 착착 진행된다면 ‘6월 말 체결’ 이후에는 국회 비준 동의 절차만 남게 된다. 국회 비준 동의 시한은 특별한 규정이 없다. 국회에서 협정 체결 직후 서둘러 비준 동의를 하기는 국내 사정상 어렵다. 따라서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는 정치지형과 선거구도를 재편할 수도 있는 초대형 정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현재까지, 대선 주자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한나라당의 유력주자 이명박·박근혜·손학규 등 이른바 ‘빅3’은 찬성, 나머지 주자들은 반대다.
세 사람 중에서는 “자유무역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가장 적극적인 찬성 쪽이다.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는 농업 분야에서 ‘조건’을 달긴 했지만 무게가 실린 것 같지는 않다.
“졸속 추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사실상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날 “기간을 정하고 미국 입장대로 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근태 전 의장도 서두르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김근태 친구들’은 지난 8일 “만약 ‘한-미 에프티에이 괴물’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김근태도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천정배 전 장관은 “(협정이 체결되면) 노무현 대통령, 한나라당, 보수언론의 대연정이 완성될 것”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의 원희룡·고진화 의원은 개방엔 원칙적으로 찬성이지만, 졸속 추진은 반대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의원은 반대다. 여권 잠재후보로 거론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개방 확대만이 절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역시 반대다.
이 문제를 대하는 유권자들의 태도 또한 흥미롭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월21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를 들여다 보았다.
‘양국간 무역 확대로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찬성), ‘미국 자본의 무분별한 침투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반대)으로 나눠서 질문을 했다. 전체적으로는 찬성 48.3%, 반대 44.8%였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영남은 찬성이 많았고, 충청과 호남은 반대가 많았다.(표 참고)
나이별로도 갈렸다. 나이가 많을수록 찬성이 높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남자는 찬성 52.8%, 반대 41.8%, 여자는 찬성 43.9%, 반대 47.8%로 엇갈렸다. 학력별로는, 중졸 이하 찬성 39.6%, 반대 44.3%, 고졸 44.7%, 49.7%, 대재 이상 54.0%, 41.5%였다. 학력이 높을수록 찬성 의견이 늘어났다. 소득별로도 의미있는 차이가 있었다.
지지 정당별로도 달랐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찬성 49.2%, 반대 42.3%였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찬성 44.1%, 반대 54.9%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자들은 찬성 52.3%, 반대 41.4%였지만,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은 찬성 44.0%, 반대 46.3%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가 3월13일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7%)에서도 이런 흐름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충분히 논의됐으니 이른 시일 안에 체결해야 한다’ 23.1%, ‘우리나라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때까지 체결해서는 안 된다’ 74.6%였다. 하지만 한 달 전 조사와 마찬가지로 지역·나이·학력별 의견 분포가 달랐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적 변수’라고 할 지역·세대 등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실장은 “대선 국면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도, “협상을 체결하고 비준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사안은 표로 연결된다. 따라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당분간 크나큰 정치적 사안이 될 조짐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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