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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몸싸움 · 패거리판 바꿔보려 했지만 ‥

등록 2005-03-21 18:10수정 2005-03-21 18:10

 여야의 여성 의원들이 지난 2월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주제 폐지를 다짐하며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종찬 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여야의 여성 의원들이 지난 2월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주제 폐지를 다짐하며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됐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등원 열달맞은 여성의원들

국회 의원회관에는 여성 의원의 방이 40개다. 전체의 13.5%인 여성 의원들의 방은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시민단체가 뽑은 우수 의원 가운데 23%인 17명이 여성일 정도로,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남성 의원들은 쉽게 착안하기 힘든 여성의 관점에서 국정의 구석구석을 챙기는 모습도 두드러졌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남성 중심적 정치문화의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여성 의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등원 10개월 동안의 경험을 여야 여성의원들로부터 들어보았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41·서울 서초갑)은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지원’을 나갔다. 당 지도부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정무위 통과를 막기 위해 회의장을 점거하는 데 차출된 것이다. 열린우리당 남성 의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방패’로 동원된 한나라당 여성 의원으로는 재정경제위 소속인 이 의원 말고도, 정무위의 이계경(55·비례대표)·나경원(42·비례대표) 의원 등이 있었다.

이 의원으로서도 이런 상황이 기꺼울 수가 없었다.

“몸싸움을 하면 여성 의원이 눈에 더 잘 띄고, 욕도 더 먹는다. 여성 의원들에게는 기존의 정치 문화를 바꿔놓으라는 기대와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 의원은 “여성을 동료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여전한 상황에서, 당내에 궂은 일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다하면 아예 설 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판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무조건 몸을 사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들만의 노력으론 (이런 현실을 바꾸기가) 어렵다”고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여성 의원들이 ‘여성’과 ‘정치인’의 구실 사이에서 힘겹게 균형을 잡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소속 당의 이익을 앞세우는 압박은 갈수록 강한 힘으로 여성 의원들을 옥죄고 있다. 여성 의원 스스로도 행동 하나하나마다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17대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해 7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성적 패러디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여야 여성의원들은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박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한 패러디물이 뜨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급히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가 열리기 전 여성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이를 ‘여성 비하’라고 규정했지만, 정작 회의에서는 공동 항의성명 채택과 국회 여성위 소집 여부를 놓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입씨름만 벌이다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50·비례대표)은 “여성 의원들이 연대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서 패러디 사건으로 오히려 서로 감정이 상했다”며 “문제 의식은 같으면서도 정치적 처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대부분 ‘남성중심적 정치문화’에 따른 피해다.

홍미영 의원은 지난해 국회 개원 뒤 한 달 내내 국회내 정책연구모임을 만드느라 바빴다. 11년 동안 인천에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지내면서 얻은 경험을 의정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면도 없는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40명의 서명을 받고, 정책 자료와 모임 규약 등을 만드느라 몸살까지 났다. 그는 자신이 당연히 모임에서 중요한 구실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임 첫날, 그는 ‘충격’을 받았다. 홍 의원은 “나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분위기였고, 남성 의원들끼리 이미 대표를 정한 것 같았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니까 오히려 따진다고 놀라더라”고 말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인가 고민했다”며 “나이와 성별, 당선 횟수를 따지는 관행에 끼어들어 새 판을 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패 동원 욕먹어도 할수 없이 보조

여성이란 이유로 주요기구 직책서 배제

남성들만의 공고한 연대 아직은 못깨

이혜훈 의원은 “당내에서도 일을 할 때 여성들을 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공식 회의 전날 술자리에서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회의장에서는 방망이만 두드리는 상황”이라며 “여성들이 ‘이너 서클’에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들어가야 하는지도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각 당은 여성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있고, 당과 국회의 공식기구에도 반드시 여성 정치인들을 참여시키도록 하고 있다. 예전처럼 ‘구색 맞추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제도도 어느 정도 갖춰지고 의식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위나 정치개혁특위 등 의원들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기구에는 여성 의원이 한 두 명에 그치거나 아예 없다.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는 의원들의 술자리나 골프 모임 등에 동석하는 여성 의원들도 거의 없다. 자연히 남성 의원들에 견줘 ‘정보’와 ‘인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52·비례대표)은 이런 기존의 정치 문화를 아예 거부하자고 주장한다.

“권모술수, 뒷거래, 패거리 문화 등이 정치라면 여성들이 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개혁해야 할 정치 문화를 거부하지 못한다면, 여성 의원이 많아져야 할 이유도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사정 탓이 아니라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셈인 ‘여성 정치’가 튼실한 열매를 맺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대부분 여성 의원들의 지적이다.

홍미영 의원은 “지금은 씨앗을 뿌리고 있는 단계”라며 “언 땅 밑에서 씨앗이 움트길 기다리듯, 들러리가 아닌 주류가 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도 “남성들은 정치에 뜻을 두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은 맹꽁이같이 준비 없이 들어온 경우가 많다”며 “초반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앞으론 뭔가를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영 의원은 “여성 의원들은 남성들이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다루고, 정쟁에 몰두해 온 정치 풍토를 바꿔내도록 차근차근 활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남성 의원은 “여성 의원들이 양과 질 모두에서 정치적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아직 당내 역할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며 “정치 문화가 여전히 가부장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배려와 여성들의 능력 발휘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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