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180
역대대선 통해 본 17대 대선기상도
17대 대선 D-180일. 승부는 이제부터다. 12월19일 치러지는 대선이 22일로 딱 180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에서 6개월이면 천지개벽이 가능한 시간이다. 선두 주자의 지지율이 반토막나기도 하고, 제3의 후보가 출연해 판을 뒤흔들기도 한다.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승패의 물줄기를 가른 주요 변수들은 D-180일 이내에 터졌다. 각 당의 경선 일정이 늦춰지면서 올해 대선정국은 형세를 분간키 어려운 칠흑 속이다. 대선판을 뒤흔들 숱한 변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세론과 ‘검증의 덫’
15대 이회창 대세론 ‘병풍’에 무릎
이명박, 당 안팎 ‘검증 칼날’에 흔들 대세론이 끝까지 먹혔던 선거는 1992년의 14대 대선이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대세론을 밀어붙여 승리했다. 3당 합당에 따른 ‘호남포위’ 구도가 물적 토대였다. 하지만 대세론은 검증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은 검증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꺾였다. 당내 경선 2개월 전인 1997년 5월 최대 57.7%까지 솟구쳤던 이 후보 지지율은 아들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8월부터 10%대로 떨어지더니 10월엔 13.5%로 곤두박질쳤다. 올해 대선에서는 일단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대세를 움켜쥔 모양새다. 하지만 검증의 터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달 초순 한나라당 경선 시작과 함께 당 안팎의 검증이 매서워지면서 상황이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비비케이(BBK)·재산 분산·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5월까지 50%를 넘나들던 그의 지지율은 한풀 꺾였다는 게 여론조사기관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현재로서 이명박 후보가 대세를 잃을 것으로 속단하긴 어렵다. 1997년 15대 대선 때 10%대까지 추락했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대선 1개월 전인 11월 27.1%로 솟더니 선거 직전엔 38.9%까지 올랐다. 선거 직전,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이번에도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제치면 지지율 재반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청와대 배후설’ 등을 제기하며 검증론에 거세게 대응하는 건, 대세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공세적 방어로 읽힌다. 제3의 후보 출현 이인제·정몽준 출마로 ‘울고 웃어’
범여 분열땐 여권서 최소 2명이상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제3 후보’는 결정적 변수 중 하나였다. 14대 때의 정주영 국민당 후보, 15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16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돌풍의 제3 후보였다. 정주영 후보는 1월부터 움직였지만 이인제, 정몽준 후보는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9월 이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제3 후보에 관한 한 올해는 과거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15대 때의 이인제 후보처럼 경선에 불복해 다른 당 또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이른바 ‘이인제 방지법’이다. 16대 때 정몽준 후보를 단박에 띄웠던 월드컵 같은 거대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엔 제3 후보 변수가 사라지는 것일까? 속단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대혼란’ 상황으로 빠져들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의 제3 후보 출몰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경선의 상처가 덧나 경선 탈락자가 지지세력을 이끌고 탈당할 수 있다.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지만 당내에서 비협조 세력으로 잔류하면서 사실상의 분당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른바 ‘범여권’의 경우, 대통합과 후보단일화라는 두 개의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복수의 후보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이 무산되면서 ‘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 쪽이나, 제3지대 신당 그룹 또는 열린우리당에서 제3의 후보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중도통합민주당(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은 4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선 후보를 내기만 하면 60억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타낼 수 있다. 15억원 안팎의 분기별 국고보조금과 별개다.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수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에 합류하지 않은 채 독자 행보를 하면서 제3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또 범여권이 막판까지 오합지졸, 지리멸렬 양상을 탈피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으로 쏠리면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제3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보 단일화 변수 DJP·노-정몽준 손잡아 ‘시너지’
올 범여 각개약진뒤 단일화 촉각 15대, 16대 대선 막판에 이뤄진 후보단일화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여실히 입증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1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1997년 10월31일 ‘디제이피 연대’에 성공했다. 이어 11월4일 민자당 시절 민정계를 이끌었던 박태준이 연대에 동참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건 선거가 1개월도 남지 않은 2002년 11월25일이었다. 후보 단일화의 상승효과는 엄청났다. 10월 17.1%까지 추락했던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48.9%로 급등했다. 15·16대 대선에서의 후보 단일화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기본 공식을 재확인시켰다. 올해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 변수가 돌출할 가능성이 있다. 범여권이 대통합에 실패하면 후보단일화가 거의 유일한 선거대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시민·사회세력, 열린우리당 사수파, 통합민주당 등 3개 정파가 각각 대선 후보를 냈다가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꾀할 수 있다. 범여권이 준결승, 결승을 치르는 단계적 후보단일화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방식이다. 범여권 후보와 민주노동당 후보의 후보단일화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범여권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추격할 경우, 공동정권 창출을 전제로 일종의 연정이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대선의 예로 볼 때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밖의 외생 변수들 14·15대 ‘북풍’ 보수표 결집 효과
17대 남북정상회담 성사 큰 이슈 14·15대 대선까지는 이른바 ‘북풍’이 주요 변수였다. 정권 차원에서 안보 위험을 조장해 보수표를 결집하려는 시도였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 남북관계 진전이 대선의 변수가 되고 있다. 남북간 화해무드가 높아지면 아무래도 한나라당보다는 범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설이 불거질 때마다 한나라당이 강한 경계감을 나타내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젠 남북관계가 선거에서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하리란 관측이 좀더 많다. 북한 변수의 가능성과 한계, 위험성을 국민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여전히 대선 국면에서 주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역시 중요한 외생 변수로 꼽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발생한 것은 대선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국가부도 사태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예상치 못한 경제의 급변이 대선 변수로 작용한 대표적 예이다. 올해 대선에선 하반기 경제가 어느 정도까지 활성화할 것인가가 경제 변수로 꼽힌다. 단적인 지표가 주가 지수다. 주가가 급등하고 예상외로 경제가 호전될 경우 범여권엔 호재가 될 것이다. 정반대로 주가가 폭락하면 범여권엔 분명한 악재가 된다. 부동산값도 급격한 등락이 있으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올 수도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이명박, 당 안팎 ‘검증 칼날’에 흔들 대세론이 끝까지 먹혔던 선거는 1992년의 14대 대선이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대세론을 밀어붙여 승리했다. 3당 합당에 따른 ‘호남포위’ 구도가 물적 토대였다. 하지만 대세론은 검증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은 검증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꺾였다. 당내 경선 2개월 전인 1997년 5월 최대 57.7%까지 솟구쳤던 이 후보 지지율은 아들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8월부터 10%대로 떨어지더니 10월엔 13.5%로 곤두박질쳤다. 올해 대선에서는 일단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가 대세를 움켜쥔 모양새다. 하지만 검증의 터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달 초순 한나라당 경선 시작과 함께 당 안팎의 검증이 매서워지면서 상황이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비비케이(BBK)·재산 분산·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5월까지 50%를 넘나들던 그의 지지율은 한풀 꺾였다는 게 여론조사기관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현재로서 이명박 후보가 대세를 잃을 것으로 속단하긴 어렵다. 1997년 15대 대선 때 10%대까지 추락했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대선 1개월 전인 11월 27.1%로 솟더니 선거 직전엔 38.9%까지 올랐다. 선거 직전,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이번에도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제치면 지지율 재반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후보가 ‘청와대 배후설’ 등을 제기하며 검증론에 거세게 대응하는 건, 대세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공세적 방어로 읽힌다. 제3의 후보 출현 이인제·정몽준 출마로 ‘울고 웃어’
범여 분열땐 여권서 최소 2명이상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제3 후보’는 결정적 변수 중 하나였다. 14대 때의 정주영 국민당 후보, 15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16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돌풍의 제3 후보였다. 정주영 후보는 1월부터 움직였지만 이인제, 정몽준 후보는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9월 이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제3 후보에 관한 한 올해는 과거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15대 때의 이인제 후보처럼 경선에 불복해 다른 당 또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이른바 ‘이인제 방지법’이다. 16대 때 정몽준 후보를 단박에 띄웠던 월드컵 같은 거대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엔 제3 후보 변수가 사라지는 것일까? 속단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대혼란’ 상황으로 빠져들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의 제3 후보 출몰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경선의 상처가 덧나 경선 탈락자가 지지세력을 이끌고 탈당할 수 있다.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지만 당내에서 비협조 세력으로 잔류하면서 사실상의 분당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른바 ‘범여권’의 경우, 대통합과 후보단일화라는 두 개의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복수의 후보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통합이 무산되면서 ‘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 쪽이나, 제3지대 신당 그룹 또는 열린우리당에서 제3의 후보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중도통합민주당(민주당+중도개혁통합신당)은 4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선 후보를 내기만 하면 60억원이 넘는 선거보조금을 타낼 수 있다. 15억원 안팎의 분기별 국고보조금과 별개다.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 수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에 합류하지 않은 채 독자 행보를 하면서 제3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또 범여권이 막판까지 오합지졸, 지리멸렬 양상을 탈피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민주노동당으로 쏠리면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제3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보 단일화 변수 DJP·노-정몽준 손잡아 ‘시너지’
올 범여 각개약진뒤 단일화 촉각 15대, 16대 대선 막판에 이뤄진 후보단일화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여실히 입증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1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1997년 10월31일 ‘디제이피 연대’에 성공했다. 이어 11월4일 민자당 시절 민정계를 이끌었던 박태준이 연대에 동참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건 선거가 1개월도 남지 않은 2002년 11월25일이었다. 후보 단일화의 상승효과는 엄청났다. 10월 17.1%까지 추락했던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48.9%로 급등했다. 15·16대 대선에서의 후보 단일화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기본 공식을 재확인시켰다. 올해 대선에서도 후보 단일화 변수가 돌출할 가능성이 있다. 범여권이 대통합에 실패하면 후보단일화가 거의 유일한 선거대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시민·사회세력, 열린우리당 사수파, 통합민주당 등 3개 정파가 각각 대선 후보를 냈다가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꾀할 수 있다. 범여권이 준결승, 결승을 치르는 단계적 후보단일화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방식이다. 범여권 후보와 민주노동당 후보의 후보단일화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범여권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추격할 경우, 공동정권 창출을 전제로 일종의 연정이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역대 대선의 예로 볼 때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밖의 외생 변수들 14·15대 ‘북풍’ 보수표 결집 효과
17대 남북정상회담 성사 큰 이슈 14·15대 대선까지는 이른바 ‘북풍’이 주요 변수였다. 정권 차원에서 안보 위험을 조장해 보수표를 결집하려는 시도였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 남북관계 진전이 대선의 변수가 되고 있다. 남북간 화해무드가 높아지면 아무래도 한나라당보다는 범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설이 불거질 때마다 한나라당이 강한 경계감을 나타내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젠 남북관계가 선거에서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하리란 관측이 좀더 많다. 북한 변수의 가능성과 한계, 위험성을 국민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여전히 대선 국면에서 주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경제 역시 중요한 외생 변수로 꼽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발생한 것은 대선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국가부도 사태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예상치 못한 경제의 급변이 대선 변수로 작용한 대표적 예이다. 올해 대선에선 하반기 경제가 어느 정도까지 활성화할 것인가가 경제 변수로 꼽힌다. 단적인 지표가 주가 지수다. 주가가 급등하고 예상외로 경제가 호전될 경우 범여권엔 호재가 될 것이다. 정반대로 주가가 폭락하면 범여권엔 분명한 악재가 된다. 부동산값도 급격한 등락이 있으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올 수도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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