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쪽짜리 ‘운하보고서’ 유출 경로
‘운하보고서 공방’ 새국면
수자원공사가 만든 37쪽짜리 경부운하 보고서의 유출 경로가 밝혀짐에 따라, 보름 넘게 계속됐던 ‘보고서 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를 위·변조, 유출 책임자로 지목하며 공세를 폈던 이명박 후보 쪽은 일단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유출 동기가 무엇인지, 왜 언론에 전달했는지, 특정 정치세력과 연결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배후’를 둘러싼 정치공방이 더욱 격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 보고서 유출경위와 남는 의문점=보고서가 샌 곳은 수자원공사였다. 문건을 밖으로 빼돌린 수자원공사 김아무개 기술본부장은 경부운하와 관련한 정부 태스크포스(TF)의 핵심인 수자원공사 조사기획팀을 지휘해왔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28일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 다니는 결혼정보업체 ㅍ사 대표 김아무개(40)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고, 김씨는 지난 1일 평소 친분이 있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에게 이를 건네줬다고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김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한 이유에 대해 “김씨가 술자리에서 경부운하 등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말해, 보고서를 갖고 있다고 하니까 ‘한번 보자’고 해서 넘겨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친분 때문에 김 본부장이 ‘대외 주의’로 분류된 중요한 보고서를 외부로 빼돌렸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ㅍ사 대표인 김씨가 주간지 기자에게 보고서를 넘긴 대목도 석연치 않다. 정치적 동기나 금전적 보상 등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김 본부장은 보고서를 넘기면서 작성자를 ‘수자원공사’에서 ‘티에프(TF)’로 고쳤다. 보고서가 공개됐을 때의 후폭풍을 미리 예상해 나름의 보호막을 쳤다는 걸 암시한다.
경찰 관계자는 “결혼정보업체의 김씨가 특정 정당이나 대통령선거 후보 캠프 등에 관여하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김씨가 보고서를 입수해 언론사에 전달한 배경을 캐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본부장을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김씨는 직무상 비밀누설 방조 혐의로 각각 입건했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지 검토 중이다.
■ ‘보고서 공방’의 확전 과정=정부가 이명박 후보의 핵심 공약을 검토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지난 4일, 37쪽짜리 경부운하 보고서가 주간지에 공개되면서부터다. 이 보고서는 ‘경부운하는 수익성이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VIP(대통령)’ ‘이명박 전 서울시장 쪽 동향’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표현들도 담겨 있었다.
한나라당은 곧바로 ‘정부 차원의 야당후보 죽이기’라고 공세를 시작했다. 이어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가 본 것은 9쪽짜리 보고서이며, 37쪽짜리는 본 적이 없다”고 답변하면서, 논란이 ‘문건 위·변조 의혹’으로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후보 쪽은 보고서를 변조·유출한 게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안희정팀’이라고 지목했다가, 나중엔 당내 ‘특정 캠프의 모 의원’이 관여했다고 박근혜 후보 캠프를 겨냥했다. 정치공방이 달아오르자,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선관위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수사가 유출자를 밝혀내는 단계에 오면서 정치적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이유주현, 수원/김기성 기자 edigna@hani.co.kr
경부운하보고서 논란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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