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혜영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왼쪽)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반부패투명사회협약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주거용 선산 안돼”-“치료비 매매허용”
열린우리, 한나라 원칙 벗어나
“두당간 투명경쟁 서로 눈치 의견도”
여야 각 당이 앞다퉈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8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주식은 물론 부동산까지 포함하는 ‘자산 백지신탁제도’를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열린우리당도 10일 부동산신탁 대상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여야가 내놓는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 방안의 실효성을 두고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부에선 여론을 의식한 ‘말치레(립 서비스)’일 뿐, 백지신탁제의 애초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 부동산 백지신탁제, 가능한가=백지신탁제란 본래 은행 등의 신탁기관이 위탁자가 맡긴 자산을 일정 기간(예를 들어 60일) 안에 처분하고 대체자산을 구입한 뒤, 변동 내역을 위탁자한테 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제도는 엄밀히 말해 ‘백지신탁’이 아니다. 여야가 검토 중인 방안에는 △신탁기관의 처분 △대체자산 구입 △변동내역의 비제공 등 백지신탁제의 ‘알맹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주거용이나 선산, 업무용 사무실 등 목적이 특정된 것을 제외한 ‘잉여 부동산’을 위탁기관에 맡긴 뒤, 공직자 재임 기간에 매매를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굳이 이름짓자면 ‘보관신탁’에 해당한다. 한나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은 공직자 재임 중 매매 금지를 원칙으로 하되, 자녀의 혼인이나 치료비 등 처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의 승인을 받아 예외적으로 매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당은 이에 대해 “부동산의 경우, 주식과 달리 백지신탁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투명사회협약 태스크포스’ 소속인 문병호 의원은 “부동산은 매매가 어렵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등 현실적으로 제도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에 대해서도 좀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도 이날 “부동산은 처분이나 대체자산 취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990002%% ◇ “보관신탁은 정답이 아니다”=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단순한 보관신탁이나 기존 자산의 매매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공직자가 재임 중 직무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행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은 “보관신탁이나 매매금지를 제도화하더라도 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직무상 정보를 이용해 자신이 맡겨둔 부동산의 가치를 높인 뒤 사직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다”며 “정치권이 논의하는 제도만으로는 공직자가 직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도 “부동산 신탁은 기술적 난점이 있다”며 “공직자의 부당한 재산 증식을 막으려면 부동산 신탁제보다는 공직자나 정치인이 관련 직무나 관련 상임위를 회피 또는 제척하도록 하는 등 다른 방법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신탁제는 법적·기술적 난점이 있고, 여야가 거론하는 보관신탁이나 매매 제한은 백지신탁제의 애초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만큼, 좀더 실효성 있는 다른 방안들을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 정치권의 눈치보기?=여야는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에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약속을 실천할 수 있을지를 놓고선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은 애초 부동산 백지신탁제에 대해, 사유재산권 침해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과 신탁의 기술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자 태도를 바꿨다. 드러내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적극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우리 당이 추진하면 한나라당이 반대할 줄 알았는데, 한나라당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오니 여당으로서는 안 하겠다고 할 수 없게 됐다”며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수준까지는 우리 당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도 “정치권이 투명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너무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지은 황준범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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