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검증·접촉 부실…정책투표 여지 사라져
대선에서 거리유세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거리유세를 대신할 미디어 선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7일부터 13일까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벌인 거리유세는 모두 26회에 그쳤다. 보통 하루에 한두 차례, 많아야 네차례 정도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39회,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32회의 거리유세를 벌였다.
유세 장소에 모이는 관중도 보통 500명을 넘지 않는다. 이는 지난 2002년 대선에 비해 횟수나 규모 면에서 크게 준 것이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하루 10여곳에서 유세를 하는 등 모두 60회가 넘는 거리유세를 했다. 유세 장소에는 최소 1~2천명의 관중이 모였고, 1만명이 넘는 관중이 모이는 대형 유세도 많았다.
이번 대선에서 거리유세가 줄어든 이유로는 우선 이명박 후보의 일방적인 독주가 꼽힌다.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 진영은 유권자를 직접 대면하며 표를 모을 필요가 줄어들었다고 판단했다. 또 이 후보에 대한 공세가 집중되고 총기탈취 사건 등으로 안전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후보를 대중에 자주 노출시키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나라당 선대위 관계자는 “끝없이 이어지는 ‘네거티브 공세’에 대응하는 덴 거리유세보다 언론을 통해 싸우는 ‘공중전’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 역시 크게 뒤처진 상황을 뒤집는 데 거리유세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비비케이(BBK) 수사발표 전후로, 정 후보는 하루 서네차례 하던 거리유세를 한두차례로 줄였다.
김영삼-김대중-정주영 후보가 격돌했던 1992년 대선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 등에서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이는 대형 유세를 볼 수 있었다. 97년부터 이런 대형 유세는 자취를 감췄다. 중앙선관위 문병길 공보계장은 “대형 유세가 청중동원 등 ‘돈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규제를 받았다. 2004년 선거법 개정 이후엔 정당연설회는 아예 금지되고 청중이 모인 곳을 후보가 찾아가는 형식의 거리유세만 허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미디어 선거의 비중이 높아지긴 하지만, 미국 대선에선 여전히 타운홀 미팅을 비롯한 옥내외 유세가 후보와 대중이 직접 접촉하는 중요한 선거운동 방식으로 남아 있다.
거리유세가 사라지면 그 빈자리를 미디어 선거가 채워줘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미디어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대선에서는 미디어마저도 후보들간의 토론다운 토론을 한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유권자가 정책투표, 전망투표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못한 대선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언론정치학부)도 “인물 검증과 정책 검증 양면에서 미디어 선거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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