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간의 대화록 유출 사건과 관련, 김만복 국정원장이 15일 오후 내곡동 국정원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첫 내부승진 불구 출발부터 ‘사찰팀 출신’ 입길
이명박 TF팀 구성·아프간 피랍 때 돌출행동도
총선출마 공들이다 남북정상회담 성과 빛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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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할 뿐이다. 45년 국정원 역사상 첫 내부 출신 원장이 자책골로 물러났으니 이제 누굴 원망하겠느냐. 도대체 김만복 원장이 그런 돌출 행동으로 얻을 이익이 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을 유출한 장본인이 바로 김만복 국정원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15일 오후,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국정원 관계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구상의 결정판으로 2006년 10월1일 국정원 개원 45년 만에 처음으로 공채 출신 원장에 기용된 사람이 스스로 낙마의 빌미를 제공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김 원장은 내정 당시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청와대는 “지난 45년간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이 떠맡아온 정보기관장을 내부 출신으로 발탁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전임자인 김승규 원장조차 “내부 인사 발탁은 시기상조”라고 반발했다. 특히 참여정부 첫 국정원 기조실장이었던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서울대 운동권 출신을 탄압했고, 국정원 기조실장 당시 조직개편을 잘못해 인사적체를 극심하게 만들고 지역갈등을 증폭시킨 인물”이라며 “‘국정원의 정치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2006년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학원사찰 전력이 부끄럽다”고 사죄했다.
취임 뒤에도 그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끊임없이 입길에 올랐다. 대선이 임박한 2007년 7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부동산 관련 의혹을 추적한 ‘국정원 이명박 태스크포스’의 존재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해 9월엔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에 억류됐던 19명의 한국인 인질 석방 직후 협상 주역인 국정원 직원, 일명 ‘선글라스 맨’과 함께 언론에 나와 자신의 공적을 내세운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뿌렸다. ‘정보기관장의 과다노출증’ 시비에 휘말렸지만, 노 대통령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보기관의 역할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며 국정원장의 ‘언론플레이’를 옹호했다.
김 원장은 최근까지 총선 출마를 위해 자신의 고향인 부산 해운대·기장에 과도하게 공을 들인다는 의혹을 받는 등 끊임없이 정치적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한때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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