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거부권 행사 시사…인수위 “떠나는 대통령이 오만”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자신의 가치에 맞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는 정부조직 개편은 새 정부 출범(2월25일) 이전에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은 두루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민주적이고 신중한 토론을 거쳐 만든 것”이라며 “이를 허물어뜨리는 법은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게 아니다.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치권은 통일부와 여성부 존치를 주장하고 있을 뿐, 다른 부분은 대체로 ‘부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인수위 주장을 수용하면서 부분적인 기능 조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으로 미뤄볼 때, 국회가 인수위의 개편안에서 몇몇 부처를 조정하는 수준으로 타협해 법안을 처리하더라도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사회적 가치와 의견이 여러가지 균형을 갖추면 나도 마음에 다 들지 않더라도 협상하는 마음으로 타협하겠지만, 여러가지 중요한 가치들이 훼손됐을 때는 내 스스로 양심이라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떠나는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을 왜 이토록 완강히 가로막으려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노 대통령 특유의 오만과 독선의 발로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최재성 대통합민주신당 원내 대변인은 “현직 대통령이 인수위의 월권이나 인수위의 속도 위반에 대해 지적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서도 “공이 국회로 넘어온 이상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해결하는 게 합당하다”고 지적했다. 손낙구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임기를 불과 한 달 정도 남겨둔 노 대통령이 끝까지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신승근 권태호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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