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기업 공공기관 기관장 임기
‘정무직 임기제’ 획일적 교체 논란
획일적 교체 시도땐 소모적 갈등 유발 가능성 커
획일적 교체 시도땐 소모적 갈등 유발 가능성 커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임기제 정무직과 공공기관 임원들의 ‘교체’ 문제가 인사갈등의 불씨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정권교체에 따른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일괄적 물갈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임기제 훼손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감사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 등 차관급 이상 정무직 43개 직위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다.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24개 공기업(한전, 토지공사 등)과 77개 준정부기관(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 204개 기타공공기관(정부출연연구소 등)도 대부분 관련 법률에 임원의 임기(기관장은 3년, 감사와 이사는 2년)를 못박아두고 있다.
이들 자리에 임기제를 도입한 취지는 공공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고려해서다. 수시로 기관장이 바뀌면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기 어렵고, 전문적인 업무수행과 안정적 조직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정치권에 선을 대려는 ‘줄대기’ 병폐가 심화되는 문제점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업무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권교체 이후 3개월 이내에 임기제 고위직을 교체한 비율도 차츰 낮아지고 있다. 김영삼 정부는 56%, 김대중 정부는 45%, 노무현 정부는 15%였다는 통계를 지난 1월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가 공개한 바 있다. 임기보장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인 것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업무분석 등을 내세워 1, 2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인물교체를 시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전인 지난 1월15일 국무회의에서 “참여정부는 임기보장 원칙을 준수하려고 노력했고, 특별한 사유 없이 임기 도중에 교체한 사례는 없었다”며 새정부의 주요 국정운영 방향과 어긋나지 않으면 법령상 정한 임기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권에서 정치적으로 임명된 인사들은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새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나 철학과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임기제를 이유로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오아무개 교수는 “임기직 임명도 통치권 아래서 이뤄진 것이므로 정권이 바뀌면 최소한 새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절차나 과정은 필요하다”며 “그러나 정부가 일률적으로 교체하는 것보다는 임용과정의 다양성을 살펴서 본인들이 알아서 처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무직 임기제’ 논란의 모범 답안은 없지만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라는 식의 획일적 교체 시도는 소모적인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박천호 명지대 교수(행정학과)는 “전임 정권이 임명했다고 해서 일 잘하는 사람을 자르고 다른 사람을 앉히면 그게 바로 낙하산 인사이고 정치적 임용”이라며 “원칙적으로는 임기를 보장하되 임용과정과 개인의 능력, 전문성, 객관적 평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시간을 두고 교체를 추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신임의 문제와 임기제 도입의 취지를 적절히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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