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행사-시위 결합 땐 대응 한계
“비폭력 지켜지는지 관건” 원칙만
“비폭력 지켜지는지 관건” 원칙만
서울시청 앞 광장을 원천봉쇄하는 등 촛불시위에 강경대응해 온 경찰은 천주교 사제단 등 종교계의 ‘출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사나 기도회, 법회 등이 촛불시위와 결합할 경우 이를 차단할 방도가 없는데다, 시위 양상이 비폭력 양상으로 바뀌면 강제진압 등 공세적 대응의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30일 저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연 비상 시국미사를 막지 않았다. 이날 미사는 종교행사여서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니었고, 사제단이 앞장 선 거리행진 역시 청와대와 정반대 방향인 숭례문 쪽을 향한 뒤 30분 만에 평화적으로 끝났다. 이날 시위 양상은 “불법·폭력시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검·경의 태도를 머쓱하게 했다. 바로 전날만 해도 경찰은 서울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둘러싼 채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했고 종로, 을지로 등 도심 곳곳에서 시위대를 강제해산했다.
서울시청 앞 종교 행사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명영수 경비1과장은 “사제단이라 할지라도 불법을 저지를 경우에는 이에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어제 하루 시위 양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위 자체의 불법성에 변화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사실 경찰 입장이 난처해졌다. 시위대가 어제처럼 평화행진을 하고 자진해산을 하는데 원천봉쇄나 강경진압을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찰청은 1일 “미국 대사관이나 정부중앙청사 등 주요 시설로 진출할 경우 빈틈없이 방어하되, 관련 집회와 행진은 안전하게 관리하고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경찰 내부 통신망에 미사를 마친 시민과 신도들이 거리행진을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며 “비폭력이 지켜지는지가 경찰의 대응 수위를 결정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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