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예산안 심의 구태
근거도 없이 수십억 `싹둑’…지역구 예산은 `버티기’
액수 정해놓고 끼워맞추기…졸속심사 매년 되풀이 “125억!” “28억!” “50억원으로 하시죠!”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은 ‘억’단위 판돈이 오가는 투기장 같았다. 1250억원이 배정된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 사업’을 놓고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이 “경제 위기 고통분담 차원에서 ‘125억원 삭감’을 제안하자 한켠에선 부대경비인 288억원의 10%를 깎자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몇마디가 오가다 곧 전병헌 의원이 내놓은 ‘50억원 감액’이 절충안으로 채택됐다. 대덕특구와 오송·오창단지에 들어설 계획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충청권 의원들의 ‘공조’로 26억원이 증액됐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법적 근거도 없고 내년에야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는데 26억원이 왜 필요하냐”며 교육과학기술부에 묻자,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내가 대신 설명하겠다”고 나서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오제세 민주당 의원(충북 청주흥덕갑)도 “이명박 정부의 공약사업이 잘 추진돼야 한다”며 ‘여당 의원’ 같은 발언을 했다. 예년보다 심사 기일이 늘었다고 하지만, 올해도 국회의 예산 심사는 침상 길이에 맞춰 키를 잡아늘이거나 다리를 잘라내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행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업의 필요성과는 별도로, 누군가 ‘깎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뚜렷한 근거도 없이 수십억원이 뚝뚝 잘려나갔다. 지역구 예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냈다.
각 정당이 증액 또는 삭감을 요구하는 방식도 주먹구구식이었다. 민주당은 애초 전년 대비 증액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50%인 3조원을 깎겠다고 벼르다가 이후 아무런 근거 없이 ‘1조 감액’이란 협상용 카드를 슬그머니 꺼냈다. 한나라당도 ‘1조 삭감’에 맞서 5천억원 감액안을 내놓았지만 몇시간도 안돼 ‘6천억’으로 흥정하다가, 곧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5천억’ 원점으로 돌아왔다. 계수조정소위의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은 “예산심사가 야당은 무조건 깎고, 여당은 무조건 지키기식으로 진행된다”며 “상임위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계수위원들이 전권을 쥐고 한 건씩 한 건씩 처리하다보니 입씨름만 하게 된다. 상임위에서 꼭 필요한 예산을 순서대로 리스트를 정해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또한 “시간에 쫓기다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복지예산은 꼼꼼이 살피지 못하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한 분석관은 “의원들은 예산 심사를 할 때 얼마를 정해놓고 거기에 끼워맞추려 한다”며 “정쟁만 계속하다가 계수조정소위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만 챙기는 관행이 매년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한 예결위원은 “막판에 이처럼 예산심사를 몰아붙여서 하니까 늘 졸속심사가 되고 만다”며 “매년 상반기에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부터 상임위·예결위 의원들이 참여해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액수 정해놓고 끼워맞추기…졸속심사 매년 되풀이 “125억!” “28억!” “50억원으로 하시죠!”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은 ‘억’단위 판돈이 오가는 투기장 같았다. 1250억원이 배정된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 사업’을 놓고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이 “경제 위기 고통분담 차원에서 ‘125억원 삭감’을 제안하자 한켠에선 부대경비인 288억원의 10%를 깎자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몇마디가 오가다 곧 전병헌 의원이 내놓은 ‘50억원 감액’이 절충안으로 채택됐다. 대덕특구와 오송·오창단지에 들어설 계획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충청권 의원들의 ‘공조’로 26억원이 증액됐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법적 근거도 없고 내년에야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는데 26억원이 왜 필요하냐”며 교육과학기술부에 묻자,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내가 대신 설명하겠다”고 나서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오제세 민주당 의원(충북 청주흥덕갑)도 “이명박 정부의 공약사업이 잘 추진돼야 한다”며 ‘여당 의원’ 같은 발언을 했다. 예년보다 심사 기일이 늘었다고 하지만, 올해도 국회의 예산 심사는 침상 길이에 맞춰 키를 잡아늘이거나 다리를 잘라내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행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업의 필요성과는 별도로, 누군가 ‘깎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뚜렷한 근거도 없이 수십억원이 뚝뚝 잘려나갔다. 지역구 예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냈다.
각 정당이 증액 또는 삭감을 요구하는 방식도 주먹구구식이었다. 민주당은 애초 전년 대비 증액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50%인 3조원을 깎겠다고 벼르다가 이후 아무런 근거 없이 ‘1조 감액’이란 협상용 카드를 슬그머니 꺼냈다. 한나라당도 ‘1조 삭감’에 맞서 5천억원 감액안을 내놓았지만 몇시간도 안돼 ‘6천억’으로 흥정하다가, 곧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5천억’ 원점으로 돌아왔다. 계수조정소위의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은 “예산심사가 야당은 무조건 깎고, 여당은 무조건 지키기식으로 진행된다”며 “상임위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계수위원들이 전권을 쥐고 한 건씩 한 건씩 처리하다보니 입씨름만 하게 된다. 상임위에서 꼭 필요한 예산을 순서대로 리스트를 정해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또한 “시간에 쫓기다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복지예산은 꼼꼼이 살피지 못하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한 분석관은 “의원들은 예산 심사를 할 때 얼마를 정해놓고 거기에 끼워맞추려 한다”며 “정쟁만 계속하다가 계수조정소위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만 챙기는 관행이 매년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한 예결위원은 “막판에 이처럼 예산심사를 몰아붙여서 하니까 늘 졸속심사가 되고 만다”며 “매년 상반기에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부터 상임위·예결위 의원들이 참여해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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