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여 만에 16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은 여러 면에서 7년 전인 1998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과 비교된다.
이번 회담이 노무현 정부 후반기 남북관계의 향배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평가되는 것처럼, 98년 베이징 차관급 회담도 김대중 정부의 남북대화의 출발점이자 새로운 신뢰구축을 위한 시험대였다. 김영삼 정부 후반기 조문파동 등으로 남북회담이 긴 동면상태에 들어간 뒤의 첫 접촉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담에서 남과 북은 대화의 첫단추를 끼우지 못했다. 일주일여 이어진 마라톤 회담은 북의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두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 북쪽은 상호주의를 비난했고, 남쪽은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과 인도주의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회담을 통해 남북은 상호 이해에 큰 도움을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당시는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는 단계였지만, 이번 회담은 무너진 신뢰관계를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한 차례 회담에서 과욕을 부리기보다, 끊겼던 남북관계의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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