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노건평씨가 건드리지 말라더라” 전해
세무조사 무마 청탁으로 구속…수사 확대 불가피
세무조사 무마 청탁으로 구속…수사 확대 불가피
박연차(64·구속 기소)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추부길(53)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 의원에게 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던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는 박 회장의 ‘구명’ 청탁을 받은 추 전 비서관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무마를 위해 정치권 주요 인사를 직접 접촉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어서 검찰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이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9월 추 전 비서관을 만났더니 ‘얼마 전 노건평씨를 만나고 왔다’면서 노씨가 ‘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 회장도 들어간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추 전 비서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검찰 쪽에 그 얘기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알았다’고만 하고 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연차 로비’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는 “(추 전 비서관이 누구에게 청탁을 했는지) 본인이 얘기를 하지 않고 있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추 전 비서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기소를 미뤄둔 상태다.
추 전 비서관에게 부탁을 받은 이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추 전 비서관이 이 의원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검찰에 가까운 여러 여권 인사들에게 비슷한 청탁을 했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추 전 비서관이 체포되기 얼마 전 미국으로 갑자기 출국한 한상률(56) 전 국세청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여권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 의원은 당시 이 대통령과 ‘거리’가 있었다”며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추 전 비서관이 이 의원에게 부탁을 했을 정도면, 친이계의 다른 핵심들이나 검찰, 국세청과 관련된 요로에도 동일한 부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추 전 비서관의 부탁을 받았다는 지난해 9월은, 추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시점과 겹친다. 추 전 비서관은 지난해 9월 초 박 회장의 한 측근한테서 “세무조사에서 비자금이 확인되면 박 회장이 검찰에 고발될 수 있다. 세무조사가 빨리 종결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 “알아보고 힘써 보겠다”며 그 대가로 2억원을 받아 챙겼다.
추 전 비서관이 노건평씨한테서 ‘노골적인’ 부탁을 받게 된 데는, 두 사람의 ‘특수 관계’가 배경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추 전 비서관은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떠나기 전까지 노건평씨와 ‘핫라인’을 트고, 전·현 정부의 비공식 창구 구실을 했다고 한다. 박 회장이 추 전 비서관에게 금품과 함께 구명 청탁을 한 사실을 노건평씨가 당시에 이미 알았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검찰은 6일부터 부산·경남의 전·현직 시장과 도지사, 전·현직 의원 등 정치인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소환 대상에는 한나라당 내 ‘친박계’의 핵심인 허태열(64) 의원,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박 회장이 4700여 계좌를 통해 움직인 3조5천억원의 사용처를 정밀 추적해 의심스런 계좌를 500여개로 압축하고, 구체적인 사용처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남일 박현철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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