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음주 중 소환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노 전대통령 의혹 수사
수뇌부, 일선 검찰청에 지역여론까지 물어봐
“전반적으로 불구속쪽…수사팀은 구속 우세”
수뇌부, 일선 검찰청에 지역여론까지 물어봐
“전반적으로 불구속쪽…수사팀은 구속 우세”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이 25일 서면조사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내면 이튿날인 26일에라도 소환 날짜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처벌 수위와 관련해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한층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정치적 항복’을 선언한 전직 대통령의 신병 처리 판단이 녹록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24일 “최근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노 전 대통령 처리와 관련해 불구속 수사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며 “그러나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구속 여부는 소환조사 뒤 전적으로 검찰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처럼 ‘불구속 수사설’이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부쩍 경계하고 나섰다. 소환도 하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내려진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에 원칙론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수사팀은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쪽에 건넸다고 진술한 600만달러 전액을 수뢰액으로 간주해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 수뇌부는 이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선 검찰청에 노 전 대통령의 처벌 수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가 하면, 해당 지역의 여론까지 두루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벌 수위와 강도에 따른 정치·사회적 파장을 미리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일선 검찰청의 한 중견 검사는 “대검에서 (노 전 대통령 처벌과 관련한) 의견을 물어와 개인 의견과 지역의 여론 동향을 보고했다”며 “수사팀을 중심으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반적으론 불구속 쪽으로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대검의 한 간부는 “임채진 총장도 노 전 대통령 구속 여부에 대한 뜻을 수사팀은 물론 참모들에게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을 불러 사실관계부터 확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결론보다 판단의 과정을 중시하는 임 총장은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 대해 고검장회의를 여는 등 주변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정을 해 왔다.
정치권의 불구속 수사 주장에 이은 갑작스런 서면조사, 명품시계 보도 등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쪽 ‘심기’를 부쩍 배려하기 시작한 검찰의 태도 등 일련의 흐름에 비춰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사이에 이미 ‘신사협정’이 맺어진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불구속하는 대신 수사에 협조하기로, 양쪽의 사전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로 미루어 소환조사 전 대국민 사과 성명 등을 낼 가능성도 있다.
여권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을 철저한 ‘정치적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검찰로선 불구속으로 방향을 잡을 경우 ‘증거에 자신이 없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수도 있어 고민이 간단치 않다. 연루자들이 많은 이번 사건 수사에서 다른 ‘피의자’들의 처리 기준이 모호해지는 난점도 생길 수 있다.
한편, 지금 예상과 달리 소환조사가 재보궐선거 이전에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 쪽이 “신속히 조사를 받고 싶다”는 강한 뜻을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