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진영 구심점 되면서도
민주당 빈약한 상황 드러내
민주당 빈약한 상황 드러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반엠비(MB)전선’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울분을 토했고, 지난 11일 6·15 선언 9돌 기념식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는 등 격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각종 국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정세에 대한 진단도 내놓고 있다. 비록 본인은 “인터뷰·강연 등을 통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뿐 정치 일선에서 정권을 반대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은 적절치 못하다”(6월3일 미국 <엔피아르>(NPR)와의 인터뷰)고 밝혔지만,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정치권은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은퇴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무대를 가장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저력 있는 배우와도 같다.
‘정치인 김대중’으로서 탁월한 점은 무엇보다도 ‘프레임 정치’를 구사하는 데 있다. 그는 일찌감치 현 정국의 문제를 3대 위기(민주주의·서민 경제·남북관계 위기)로 일목요연하게 정의했고, 민주당은 최근 이를 그대로 받아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독재자’ 발언은, 보수 진영과 개혁 진영을 각각 결집시키며 금세 ‘독재 대 반독재’ 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봉우리가 높으면 골이 깊듯, 그의 정치적 행동은 또렷한 명암을 만들어낸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과잉 대응함으로써, 집토끼들을 불러들여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쪽 지지기반도 굳히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개혁 진영의 무기력한 상황을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결심한 듯하다”며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개혁 진영이 대오를 정비해 정국을 주도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김 전 대통령이 부각될수록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초라한 처지가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요즘 정치적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김 전 대통령이 말한 ‘원칙’에 공감하기 때문에 이를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슈로 몰고가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먹히는 것은 구심점 없는 민주당의 빈약한 상황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당이 빨리 힘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이 똑 부러지게 못하니까 김 전 대통령이 대신 나서는 것 아니겠느냐”며 “당 지도부는 좀더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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