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한·일 갈등 고려해 거부
일본 정부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1973년 8월 발생한 이른바 ‘김대중 납치 사건’의 피해자 자격으로 경찰 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 두 나라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22일 시작된 김 전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일본에 오면 납치 사건의 피해자로서 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서를 꾸며 이 사건을 종결지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김 전 대통령에게 조사에 응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원하지 않으면 조사하지 않겠다”는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조사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지난 22일 퇴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 방문길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조사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최근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최근 한국 정부의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이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자, 일본 정부가 나름대로 대응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납치 사건 이후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으나, 그때는 일본 정부의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외교소식통은 “당시 한일 관계는 지금처럼 투명하지 않았다”며 “그때는 두 나라가 이심전심으로 껄끄러운 일을 피하려 했으나, 지금은 사정이야 어쨌든 정리할 건 정리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1973년 8월8일 당시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동원해 일본에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던 김 전 대통령을 납치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으로, 당시 일본 정부는 이를 명백한 주권 침해로 보고 박 정권을 추궁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4년 8월15일 발생한 이른바 ‘문세광 저격 사건’으로 일본 정부가 수세에 몰리면서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종결 통고로 흐지부지됐다.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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