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꺼낸 여권 움츠러들고
민주당은 ‘중대선거구’ 압박
민주당은 ‘중대선거구’ 압박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기한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놓고, 여야의 공수 역할이 뒤바뀌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말을 꺼낸 당사자인 청와대와 여당은 정작 확대해석을 피하며 수세적 자세를 취하는 반면, 반면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 개편 같은 좀더‘근본적 카드’를 꺼내들며 여권을 적극 압박하는 모양새다.
청와대와 여당은 선거제도 개편론이 중·대선거구제 개편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 도입으로 논의를 한정하려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이 대통령은 호남에서 영남(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 호남(민주당) 의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지역주의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데, 중·대선거구제를 할 경우 (특정 정당의 싹쓸이가 심해져) 지역주의 해소에 꼭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권역별비례대표제나 석패율 제도 도입이 우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며 “이런 제도에다 중·대선거구제까지 하라는 것은 한나라당에게 모든 걸 손해보라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치선진화특위 위원장인 허태열 최고위원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선거구가 아니라 선거제도”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에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중·대선거구제에 부정적인 것은 한 지역구에서 의원 2~5명을 뽑더라도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당선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친이 직계 의원은 “한 지역이 똘똘 뭉쳐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을 배제할 경우, 지역갈등이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중·대선거구제 개편이 지역주의를 돌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인식 아래, 찬성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이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을 얘기한 것이 지역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런 차원이라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저희는 환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논의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도 선거구제 개편에 소극적인 여권을 겨냥해 “스스로 먼저 제기한 논제를 쪼그라뜨리지 말라”고 압박했다. 선거제도 개편론을 국면전환용 카드로 의심하고 있는 민주당은 개편이 이뤄지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나라당보다 한걸음 앞서 내지르는 것이 여권의 정치적 의도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이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유주현 황준범 최혜정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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