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 ‘채움의 정치’…정책 대안 알기 쉽게 설명
노 전 대통령 ‘버림의 정치’…작은 득실보다 큰 원칙 지켜
노 전 대통령 ‘버림의 정치’…작은 득실보다 큰 원칙 지켜
그들은 어떻게 뿌리깊고 가지 굵은 거목으로 성장했을까.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한평생 시대의 모순과 정면충돌하면서 자신들을 벼렸다. 그러나 ‘투사’라는 호칭만으론 두 사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투사라는 이력에 덧붙여 끊임없는 독서와 학습을 통해 경세가로서 안목을 키워나갔다. 권위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당장은 지더라도 더 큰 싸움에서 이기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김 전 대통령은 왕성한 지식욕으로 길어올린 생각들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재능이 탁월했다. 그는 생전에 “정책을 설명할 때는 알기 쉽게 설명해서 국민들이 숟가락만 들면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지겹다 싶을 만큼 반복해야 표로 이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대중들에게 명쾌한 설명을 내놓기 위해, 그는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나갔다. 말년에 이명박 정권의 본질을 규정한 ‘3대 위기론’ 또한 71년 대선 출마 당시부터 제시했던 민주화, 3단계 통일 방안, 대중경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명의 정치신인이던 55년 <사상계>에 발표한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라는 논문에서 그는 기업가·정부관료뿐 아니라 노동운동가들의 허위의식도 통렬하게 비판했는데, 이는 이후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기본틀로 발전했다. 한평생 화두로 제시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말도 67년에 간행한 <분노의 메아리>란 책에서부터 등장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그가 실력을 갖춘 ‘대통령감’이었다는 데 토를 달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표현할 때 흔히 사용하는 ‘승부사 기질’은 이기려고 승부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데서 비롯됐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바보 노무현’에 대한 사랑도 여기에서 자라났다.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에 반발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품에서 뛰쳐나가는 바람에 부산이라는 정치적 텃밭을 잃었다. 낙선한 그는 이후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자서전에 “이 책으로 돈을 좀 벌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예 후원회 사무실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를 적어놓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2002년 당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협상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지지자였던 추미애 의원 등이 눈물로 반대했음에도 “하루 밤낮이면 천하가 세 번은 바뀐다. 패배하는 것보다 정권 창출이 더 중요하다”고 수용했다. 지지자들을 우수수 떨어져 나가게 만든 2005년 ‘대연정론’도 ‘버림의 정치’에 맥락이 닿아 있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워크숍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받아들이면 다수당에 조각권을 주겠다”고 선언했고 이를 3년 뒤 공식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에선 좀처럼 퇴각하지 않았다. 그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한 뒤 정 후보 쪽에서 조각권을 달라고 했으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단일화 요구는 받아들였지만, 나의 원칙과 어긋나는 정치적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채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버림을 두려워하지 않기.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두 명의 ‘인물’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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