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사람 오는 사람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실을 방문해 한승수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운찬 총리’ 발탁 이후] 제자들이 보는 정후보자 선택
‘서민중도’ MB노선 변질 막게 견제하라 주문
현실정치서 원칙 구현여부 섣부른 판단 일러
‘서민중도’ MB노선 변질 막게 견제하라 주문
현실정치서 원칙 구현여부 섣부른 판단 일러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새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여야 등 각계 반응이 찬반으로 갈리고, 대통령과 경제 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없다는 그의 발언을 놓고 정체성 시비까지 빚어진다. 그렇다면 정 후보자가 평소 가장 아끼는 제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 교수는 정 후보자가 서울대 교수 정년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두고 만든 금융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고, 김 교수는 평소 그의 강연원고 작성을 도울 정도로 신뢰가 깊다.
두 제자는 먼저 깊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전 교수는 “정치를 하려면 기본 생각이나 철학이 더 가까운 야권에서 하는 게 자연스럽다”면서 “사전에 전혀 몰랐고, 알았다면 말렸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 개혁진보진영의 중요한 자산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충격을 표현했다.
제자들의 우려는 무엇보다 정 후보자와 이 대통령간의 정체성 차이 때문이다. 정 후보자는 친기업, 금산분리 완화를 포함한 규제완화, 대기업과 부자 위주의 감세, 한반도 대운하 건설, 747 성장정책 등 대통령의 핵심공약들에 대해 모두 비판적이었다. 전 교수는 정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이제는 학자라기보다 준정치인의 말로 해석해야 한다”며 한수 접고 말했다.
정 후보자가 위험한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현실참여 의욕을 꼽는다. 정 후보자는 평소 경제학자는 책상머리에 앉아있기보다 현실참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3일 기자회견장에서도 이런 뜻을 내비쳤다. 그는 2007년 대권 도전 시도 당시 제자들에게 “이것이 마지막 현실참여 기회인 것 같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결국 대권 도전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험을 한 셈이다.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의 ‘서민중도’ 노선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선생님이 그것을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로서 정 후보자는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즈주의자’다. 그는 관치금융과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반대, 산업자본의 금융장악을 막는 금산분리 찬성, 정부의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 감세를 동반한 정부역할 축소 반대 등 개혁진보진영의 생각을 대부분 공유해왔다. 하지만 반대의 측면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원칙적 찬성이나, 고교평준화 등 대입 삼불정책에 비판적인 것이 대표적이다. 전 교수는 “진보와 보수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라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사회변화의 근본 동력을 노동자나 시민사회에서 찾기보다, 정부나 엘리트계층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중도보수 내지 합리적 시장주의자”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또 정 후보자가 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를 기원했다. 전 교수는 “앞으로 본질적 문제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지 볼 때까지 섣부른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면서 “선생님도 대통령과 타협할 수 없는 선에 도달하면, 진퇴를 과감히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도 “대통령의 서민중도 노선이 한낱 정치구호로 전락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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