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질서유지권’ 발동 근거 부족
펼침막 강제철거 공무집행 범위 벗어나
펼침막 강제철거 공무집행 범위 벗어나
여당과 보수언론 등의 ‘사법부 흔들기’가 심해지면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무죄 판결이 어떤 논리를 담았는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강 대표가 △국회 경위의 옷이나 멱살을 잡고 흔들고(공무집행방해)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보조탁자를 넘어뜨려 모서리를 깨뜨리며 소란을 피우고(방실침입·공무집행방해·공용물건손상) △국회의장실 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 행위(공무집행방해)를 저질러 실정법을 저촉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지난 14일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려면 피해자가 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인정돼야 하지만, 당시 국회 경위나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정당한 공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았기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국회법이 규정한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은 “회의중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때”로 제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며 최고위원회를 열 때 본회의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유지권 발동을 이유로 민주노동당이 내건 펼침막을 강제로 철거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회 경위들이 스스로 ‘위협을 받지 않았으며, 항의의 의사표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는 점도 무죄의 이유로 들었다.
박 사무총장이 사무실 소파에서 신문을 읽은 행위도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 판사의 판단이다. 이 판사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비추면, 공무원이 본래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외에 근무 중 신문을 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공무수행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직무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무총장실의 보조탁자를 넘어뜨려 부순 것도 일련의 항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로, “보조탁자를 넘어뜨려 그 효용을 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이와 함께 강 대표가 사무총장실에 무단 침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정당 대표가 항의하기 위해 사무총장실에 들어간 행위 자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조항에 따라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다른 당 원내교섭단체 대표들과 회의를 하던 김형오 국회의장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는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약 3m 거리에서 소음을 야기하기는 했으나, 회의 참석자들이 ‘정상적으로 회의를 마무리했고 신체·정서적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강 대표가 항의에 나서게 된 맥락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또 과거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농성을 할 때 국회 경위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처럼 펼침막을 빼앗지는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는 원내정당 대표가 정치행위의 과정에서 소란을 피운 것을 국회 밖에서 단죄하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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