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정치’ 넘어 ‘풀뿌리 정치’ 구현해야
[민노당 10년 진보정치 10년] ② 유권자의 평가
민주노동당 창당 10돌을 맞아 진보정당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된 이번 조사는 소수의 응답자와 집중적인 대화를 통하여 정보를 찾아내는 ‘표적집단 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 방법을 사용해 이뤄졌다.
이번 조사는 지난 22~23일 리서치앤리서치 사무실에서 △386세대 주부(40대) △민주노동당 탈당 뒤 특정 정당 비입당자(30~40대) △1996~2000학번 청년세대(30대) △민주노동당 당원(20~40대) 등 각각 7~8명으로 구성된 4개의 그룹을 대상으로 2시간씩 진행됐다. 조사 참가자들은 우선 전화면접을 통해 조사 참석 의사를 밝힌 유권자들과 일정수를 단순 무작위 추출하고, 그 뒤 이들의 소개나 제공 정보에 따라 표본을 추가로 확보하는 ‘눈덩이 표본추출’(snowball sampling) 방식을 통해 선정됐다.
정당이미지|탈당자 “조중동이 폭력이미지로 계속 낙인찍어”
정책평가|주부 “생활정책 홍보 부족해 아는 사람이 없다”
분당과연대|주부 “진보신당과 통합을” 청년세대 “실현 불가능” 10년 동안 ‘왼쪽’이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소장 최규엽)가 표적집단면접조사(FGI)를 통해 물었다. 386세대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일상과 ‘접촉면’이 가장 넓은 주부들, 직장 새내기 나잇대의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이들, 민주노동당에 실망해 당을 떠난 뒤 다른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 그리고 계속 당을 지키고 있는 당원들이 조사에 응했다. 이들은 각자 놓인 상황은 달랐지만, ‘말’(주장하는 명분)과 ‘몸’(미숙한 현장투쟁방식)을 넘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풀뿌리 정치를 기대하는 목소리는 비슷했다. ■ “과격한 이미지는 언론 탓” 강기갑 대표의 무죄 판결 이후 더욱 논란을 빚고 있는 ‘민주노동당 폭력 이미지’에 대해 참석자들은 “폭력은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면서도 다수가 언론의 편파성을 들었다. 주부 임아무개씨는 “언론이 자꾸 민노당의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렇지 솔직히 약한 쪽에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 (여당과) 타협이 안 되니 민노당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탈당했다는 고아무개씨는 “조중동이 계속 과격하다고 낙인찍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돌아보면 고작 강 대표가 공중부양한 것 말고 더 폭력적인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원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려다가 그런 건데 이미지만 부드럽게 한다고 되느냐” “몸으로라도 하는 것에 통쾌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극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20~30대 쪽은 몸싸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강 대표의 공중부양에 대해 참가자 8명 중 ‘유죄’라는 의견은 4명이었고, 1명만이 ‘무죄’, ‘판단이 힘들다’는 쪽은 3명이었다. 이아무개씨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뭔가 열등감을 가진 당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전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방송프로그램에 자주 나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주부 김아무개씨는 “예전에 권영길·노회찬씨가 토론에 나온 걸 보면서 ‘좋은 일도 하는구나,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부들 사이에선 강 대표의 ‘도포와 수염’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원·탈당자들은 “소수정당의 확실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긍정적 답변을 많이 했다. 강 대표 외에 민노당 소속 인사들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민노당의 우중충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가난하지 않은 사람”, “인물도 받쳐주고 말발도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 “주장은 있는데 힘이 없다” 학교급식운동, 노령연금,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민주노동당의 구체적인 민생정책에 대해선 주부들의 관심이 가장 높았다. 민주노동당이 씨를 뿌리면 여권이 열매를 따 먹어 안타깝다는 얘기도 나왔다. “민노당이 추진해서 된 생활정책이 여럿인데 민노당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아 아는 사람이 없다”, “제안은 잘하는데 마무리는 집권당에서 다 하기 때문에,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 다 해준 것처럼 생각한다”는 의견이 여럿이었다.
20~30대 층에선 “민노당 공약은 약자에게 다 밀어주자는 편파적인 내용”, “이론은 맞는데 과정이 너무 과격해 선거에선 표를 찍어주기가 꺼려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정 정책과는 별도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창당 그 자체가 정치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탈당자인 이아무개씨는 “민노당은 다른 정당처럼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노동자·농민·빈민을 대변하는 당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통일정책을 평가하는 데선 네 개 그룹 안에서도 서로 차이가 컸다. 386주부 중 일부는 미군 철수, 북한과의 교류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이들은 “북한에 대한 퍼주기”라는 반감을 갖고 있었다. 당원들은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현재의 대북정책은 구태의연하고 뚜렷한 목적이 없다”는 쓴소리도 쏟아냈다. 젊은 층에선 “북한 인권문제는 왜 거론하지 않느냐”는 물음도 있었고, 탈당파 일부는 “친북 이미지만 굳혔다”는 의견도 내놨다.
■ “통합 빨리해야” VS “지금은 어렵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쪽 모두에 ‘상처’로 남아 있는 분당 문제에 대해서도 첨예한 의견들이 오갔다. 주부들 대다수는 분당의 원인을 “권력 암투”, “밥그릇 싸움”으로 봤다. 해법도 “빨리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강 대표가 진보신당에 통합을 제안한 데 대해서도 우호적이었으나, 한편에선 “통합 선언부터 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할 수 있다”, “민노당도 뭔가 양보해야 한다, 쇄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럿 나왔다. 그러나 20~30대는 주로 분당 원인을 “이념·성향 차이”에서 찾았고, “통합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도 내놨다.
분당 과정을 지켜봤던 탈당파들과 당원들의 속내는 복잡했다. 탈당자인 정아무개씨는 “두 당은 언젠가는 떨어져 나와야 할 당이었지만 그런 방식은 아니었다”며 “그래서 진보신당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원 여아무개씨는 “진보신당은 정당성은 있었으나 비열하게 나갔고, 민노당은 탈당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치열한 토론이 없었다”며 “진보신당은 당을 나간 방식에 대해서 사과하고, 민노당은 패권주의·비민주성을 토론하고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연합에 대해선 일부는 “민주노동당의 색깔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청년세대 중에선 참석자 8명 중 7명이 “민주당과 민노당 사이엔 겹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연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관련해, 참석자들은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현실적인 좌표를 모색하고, 설득력 있는 화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원 황아무개씨는 “분배 중심의 정책을 고집하는 건 잘못”이라며 “진보적인 성장 전략이 없다면 집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당원들은 “부자들의 세금을 걷자고 하면 거부감이 든다”, “급진적인 것보다는 스마트하게 말하는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정책평가|주부 “생활정책 홍보 부족해 아는 사람이 없다”
분당과연대|주부 “진보신당과 통합을” 청년세대 “실현 불가능” 10년 동안 ‘왼쪽’이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소장 최규엽)가 표적집단면접조사(FGI)를 통해 물었다. 386세대로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일상과 ‘접촉면’이 가장 넓은 주부들, 직장 새내기 나잇대의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이들, 민주노동당에 실망해 당을 떠난 뒤 다른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 그리고 계속 당을 지키고 있는 당원들이 조사에 응했다. 이들은 각자 놓인 상황은 달랐지만, ‘말’(주장하는 명분)과 ‘몸’(미숙한 현장투쟁방식)을 넘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풀뿌리 정치를 기대하는 목소리는 비슷했다. ■ “과격한 이미지는 언론 탓” 강기갑 대표의 무죄 판결 이후 더욱 논란을 빚고 있는 ‘민주노동당 폭력 이미지’에 대해 참석자들은 “폭력은 잘못”이라는 전제를 깔면서도 다수가 언론의 편파성을 들었다. 주부 임아무개씨는 “언론이 자꾸 민노당의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렇지 솔직히 약한 쪽에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 (여당과) 타협이 안 되니 민노당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탈당했다는 고아무개씨는 “조중동이 계속 과격하다고 낙인찍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돌아보면 고작 강 대표가 공중부양한 것 말고 더 폭력적인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원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려다가 그런 건데 이미지만 부드럽게 한다고 되느냐” “몸으로라도 하는 것에 통쾌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극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20~30대 쪽은 몸싸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강 대표의 공중부양에 대해 참가자 8명 중 ‘유죄’라는 의견은 4명이었고, 1명만이 ‘무죄’, ‘판단이 힘들다’는 쪽은 3명이었다. 이아무개씨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뭔가 열등감을 가진 당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전투적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방송프로그램에 자주 나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주부 김아무개씨는 “예전에 권영길·노회찬씨가 토론에 나온 걸 보면서 ‘좋은 일도 하는구나,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미지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부들 사이에선 강 대표의 ‘도포와 수염’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당원·탈당자들은 “소수정당의 확실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긍정적 답변을 많이 했다. 강 대표 외에 민노당 소속 인사들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민노당의 우중충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가난하지 않은 사람”, “인물도 받쳐주고 말발도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해 6월 부산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2009 정책당대회’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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