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된 17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 100여명이 한·일 양국의 공개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일협정 문서 40년만에 일부공개
정부, 사망자에만 생색내기 보상
유족회, 모든 문서 공개 촉구
“한-일 정부 상대 소송 나설 것” 외교통상부가 17일 제6~7차 한일 회담에서 청구권 협상과 관련된 문서철 5권을 공개한 데 대해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는 정부의 한-일 회담 관련 문서 공개를 계기로 일본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에 나설 뜻임을 분명히했다. 또 유족회를 비롯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이날 정부가 한-일 협정 문서를 일부 공개한 데 대해 “미흡하다”며 개인청구권 관계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문서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 1200쪽에는 1965년 한일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외무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에는 개인청구권도 포함돼 있으며, 개인의 정당한 청구권에 대해선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국내 일제강점 피해자들의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대한 보상 요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청구권 문제 타결의 분수령이었던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회담’과 한일 협상 마무리 단계에서 오간 정부훈령과 관계부처 사이 전문, 회의록도 포함됐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는 이날 “한일 협정은 한·일 양국이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권력끼리 야합한 결과물”이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유해 미송환 유가족 피해배상 소송’, ‘미불임금·공탁금·후생연금 반환청구 소송’을, 한국 정부를 상대로는 70년대 정부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사망·부상·생존자들의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소송과 보상금 규모의 적절성 여부를 묻는 소송 등 네 가지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내 일제강점 피해자 및 유족 단체와 시민사회 단체는 이날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공개한 5건의 문서는 청구권 협상의 진상을 밝히는 데 매우 제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외교부와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상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공개된 ‘한국의 대일청구권 8개 항목에 관한 양측 입장 대조표’를 보면, 당시 정부는 개인 피해 보상금으로 생존자는 200달러,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650달러와 2000달러를 일본에 제시했다. 이는 당시 환율 등을 감안할 때 정부가 1975∼77년 사망자 8552명에 한해 보상한 25억6560만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에 앞서 64년 5월 경제기획원과 외무부 사이에 오간 질의와 답변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교섭이 민간인 청구권의 보상을 전제로 한 것인가”라는 기획원의 질의에 “개인청구권도 포함해 해결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개인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진다”고 외무부가 답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5∼6차 한일 회담 회의록을 보면, 정부는 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에서 합의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1억달러 이상의 자금 명목을 청구권으로 표현하려 한 반면, 일본은 경제협력자금이라는 명칭을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이날 문서 공개에 따라 앞으로 국내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이번주 중 국무조정실에 ‘한-일 수교회담 문서 공개 등 대책기획단’을, 외교부에 ‘문서 공개 실무기획단’을 각각 설치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강문 길윤형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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