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3일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무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 도중 제스춰를 취하고 있다. 탈린/AP 연합뉴스
클린턴 “분쟁 유발할 행위·오판 없어야”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도 ‘신중대응’ 주문
천안함 장기화로 ‘6자 재개’에 깊은 고민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도 ‘신중대응’ 주문
천안함 장기화로 ‘6자 재개’에 깊은 고민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일차적 관심은 남과 북이 사고 대응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 행위를 감행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천안함 사고로 뒤로 미뤄둔 북-미 추가접촉을 포함해 6자회담 프로세스의 재개 여부를 놓고 미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천안함 사고 이후 남북간 군사행동 가능성을 ‘견제’하는 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응을 유발하는 행위나 오판이 없기를 바란다”며 “그것은 어느 쪽에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힐러리 장관은 ‘오판’의 주체를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질문의 맥락을 살펴보면 일차적으론 대북 경고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한국내 일부 보수층을 중심으로 ‘대북 보복설’이 나오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반영돼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한국 정부에도 ‘신중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천안함 침몰 사흘째인 지난달 28일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군에 의한 어떠한 특이동향도 탐지하지 못했다”고 밝히는 등 미국 정부 인사들은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관련됐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취지의 공개 발언을 여러차례 하며 상황 관리에 나선 바 있다. 박선원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도 지난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미국 정부는) 북한의 피격에 의해서 된 것이든 사고에 불과한 것이든 (천안함 사고로 나타난) 흐름 전체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노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적잖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성사 직전까지 간 북-미 추가접촉을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보류한 미국 정부로선 갈수록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미국은 이달 중순께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를 수용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김 부상 초청 단체인 전미외교협의회(NCAFP)와 구체적인 절차를 협의하던 중이었다.
미 정부의 이런 고민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발언에 어느 정도 배어 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오늘 우리는 한국 해군함정 침몰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기에 당연히 단기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면서도 “그러나 천안함을 넘어 한반도 평화와 번영, 비핵화, 안정의 진전을 위해선 다자간 협약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고를 이유로 북-미 접촉을 보류하는 것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6자회담 프로세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천안함 실체 규명 작업이 장기화되면 미국도 마냥 6자회담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행정부 처지에서 보면, 천안함 사고는 국지적이고 재래식 무기의 문제인 반면에 북핵 문제는 동북아 및 세계적 차원에서의 핵무기 비확산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용인 기자,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이용인 기자,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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