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 전 증앙정보부장.
미 국무부, 외교문서 공개
미, 전면전 우려해 대응 접어
이후락-김영주 핫라인 통해 DMZ내 남북 충돌 피하기도
미, 전면전 우려해 대응 접어
이후락-김영주 핫라인 통해 DMZ내 남북 충돌 피하기도
지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후,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됐던 시기에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 북한 주석(당시 수상)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사이에 ‘핫라인’이 설치돼 남북간 마찰을 피하는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국무부는 4일(현지시각) 1970년을 전후한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한반도 외교 정책을 담은 ‘미국의 대외관계, 1969~1972년, 한국편’ 외교문서를 비밀해제해 공개했다. 489쪽 분량의 이 문서에는 북한의 미 정찰기 EC-121기 격추사건, 남북관계, 71년 대선 등의 한반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외교문서를 보면, 북한은 71년 12월15일 남한 쪽에 전화를 걸어 “남한군이 비무장지대(DMZ)에서 기관총 500발 이상을 난사해 보복에 나설 방침”이라고 알려왔다. 이후락은 이를 확인한 뒤, 핫라인을 통해 “오인사격”이라고 해명했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여 보복 계획을 거둬들였다. 문서에는 현재의 천안함 침몰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있다. 닉슨 행정부는 69년 승무원 31명이 숨진 북한의 미 정찰기 EC-121기 격추사건 당시, 즉각적인 대북 군사보복을 검토했으나 전면전 가능성을 우려해 포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윌리엄 포터 주한 미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강력한 대북 대응을 촉구했지만, 포터 대사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또 김일성 북한 주석이 68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기도된 ‘1·21 사태’에 대해 “북한 내 ‘극좌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72년 5월 초 대북 밀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에게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외교문서는 “(김일성의) 이런 언급은 (1·21 사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말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파벌적 갈등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남북간 비공개 협상을 주도했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김일성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동조하지 않았다고 외교문서는 전했다. 특히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는 이후락의 대북협상 속도와 방법에 강한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필 총리는 72년 11월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이후락은 자신의 개인적 위상 때문에 협상을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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