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풍당당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등 미 고위관료들과 북핵 6자 회담의 재개 문제 등을 논의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3일 오후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영종도/연합
“북 복귀 날짜등 결과 없지만 추가협의·7월회담도 내다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미국 방문과 뉴욕 세미나에서의 북-미 접촉이 끝났다. 6자 회담 재개 길목의 마지막 수순으로 여겨졌던 두 외교적 움직임은 최종 답을 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북한은 회담 재개의 날짜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간에 추가협의가 예고되고 있으며, 한-미는 6자 회담 재개 이후의 대응책 또는 ‘그림’을 논의하는 등 ‘7월 회담’을 이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우선, 뉴욕 세미나에 대한 반응은 모두 긍정적이다. 세미나를 주재한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의 도널드 자고리아 교수(뉴욕 헌터대)는 성명을 내어, “참석자들은 모두 회담이 솔직했고 건설적이었다고 동의했다. 우리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돌아올 것으로 낙관한다”고 밝혔다. 조지프 디트러니 미 국무부 대북협상대사는 “우리는 테이블에서 모든 얘기를 나눴고, 좋은 회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드러난 것만을 놓고 보면, 북한은 여전히 ‘명분’을 요구했고, 미국은 ‘날짜’를 원했다. 리근 외무성 미주국장은 1일 세미나가 끝난 뒤 “우리는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며 “6자 회담에 나가는 우리의 입장은 명백하다. 우리로 하여금 6자 회담에 나갈 수 있는 명분을 (미국이) 세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와 다른 모든 6자 회담 당사국들이 기다리고 있는 말은 북한이 언제 6자 회담에 돌아와 건설적으로 참여할 것이냐는 ‘날짜’”라며 “그 문제 말고는 이 접촉의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이 일관되게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전제로 한 양자접촉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세미나에 디트러니 대사가 참석한 것은 일종의 ‘양보’로 볼 수 있었다. 매코맥 대변인이 지난 30일 세미나에서의 디트라니-리근 첩촉을 “협상은 아니었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양보’가 아니라 북한의 답을 듣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국무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6자 회담 재개 문제가) 이 접촉의 유일한 이유이며, 우리 앞에 놓인 문제”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리근 국장이 미국이 세워줘야 할 ‘명분’을 요구하며, 오히려 시기 문제를 미국이 답변할 사안이라며 떠 넘긴 것은 양자 사이에 아직 좁혀야 할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 상황은 이미 6자 회담이 열리느냐 아니냐는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세미나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위성락 주미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는 “서로간의 이해와 신뢰가 높아졌다”며 “앞으로 다른 형태의, 다른 채널로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북-미간의 추가 협의를 예고했다. 정부는 이미 언제 열리는가의 문제보다, 6자 회담의 재개를 전제로 회담의 실질적 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이 말하는 명분이 그럴듯한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북도 제4차 6자 회담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중시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1일 딕 체니 부통령을 만난 뒤 강조한 것도 이 대목이다. “6자 회담 재개시 제3차 회담 때의 미국 제안과 한국의 중대제안을 결합해 추진하면 문제해결에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이미 이 ‘중대 제안’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설명했다고 밝혔었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체니 면담때 측근 채수찬 의원이 배석 외교부 당국자는 빠져…“공화당쪽과 친분”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지난 1일(현지시각) 면담에 외교통상부의 주무 국장 대신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이 배석한 사연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이 자리는 정 장관이 지난달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결과를 미국 쪽에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였다. 미국 쪽에선 부통령실의 루이스 리비 비서실장과 스티브 예이츠 외교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공식 라인’에 있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우리 쪽에선 채 의원 외에 홍석현 주미대사와 박선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이 배석했으나, 외교부의 김숙 북미국장은 빠졌다. 정 장관한테서 지역구(전북 전주덕진)를 물려받은 채 의원은 정 장관의 ‘최측근’으로 꼽히지만, 외교 시스템의 ‘공식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외교부 쪽은 3일 “미국 쪽에서 배석 인원의 숫자를 3명으로 제한해 부득이 인원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채 의원은 공화당 쪽 인사들과 친분이 깊어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 의원은 미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학에서 경제학과 종신교수로 재임하며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과 친분을 쌓는 등 여권에서는 드물게 공화당 쪽과 교분이 깊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서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채 의원이었다. 채 의원 쪽은 “채 의원은 공화당 인사들과 교분도 깊지만 북한 경제와 ‘다자간 협상이론’을 전공한 대북협상의 전문가”라며 “정 장관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면담에 배석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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