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서 한홍구 교수 글 ‘거두절미’ 왜곡
한동안 잠잠했던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다시 ‘깨진 레코드판’을 틀기 시작했다. 정 의원은 5일 국회에서 열린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리를 자신의 화려한 복귀 무대로 삼았다. 소재는 국정원 과거사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글이었다.
정 의원은 이날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이 참고인과 증인으로 요청했던 한 교수와 탈북자 출신의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가 불참한 것을 확인하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한 교수의 출석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지난해 <한겨레>의 ‘역사이야기’라는 책에서 김일성을 ‘20세기형 민족주의자’라고 칭했다. 이밖에도 김일성에 대해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민중영웅’ ‘혁명의 창건자’ ‘철저한 실용주의자’라고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어 “한 교수는 이 글에서 ‘당시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며 “이런 사람이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위원이다. 오늘 꼭 출석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의 발언은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이 “저서 중 극히 일부분만을 발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제재할 때까지 계속됐다.
아주 사소한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으면 이렇다. 한겨레에서 펴낸 역사이야기라는 책은 없다. 정 의원이 언급한 대목은,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내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라는 고정 기고글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한 교수는 수 년간의 기고글을 묶어 <대한민국사> 1·2·3편을 펴낸 바 있다. 정 의원이 질의 내용을 준비하면서 직접 글을 읽어본 것인지, 아니면 누가 써준 것을 대독한 것인지 의심을 살 만하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 의원의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너무 컸다’고 운운한 대목이다. “분명 김일성은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는 다시 없는 영웅이었다. 대중의 김일성에 대한 존경과 기대는 너무나도 컸다”는 표현이, 정 의원의 입을 거치면서 마치 한 교수가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너무 큰 것으로 붉은색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한 교수가 <한겨레21>에 기고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이란 글의 요지는, 굳이 몇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그에 대한 남과 북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갈라진 조국의 한쪽에선 민족의 태양인 반면, 다른 한쪽에선 극악무도한 전범이었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은 김일성 폄하에 앞장섰다. ‘가짜 김일성설’은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자라는 그늘에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민족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던 그의 면모는 가려져 있다. 최소한 김일성이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한 교수가 글에 담고자 했던 진심은 마지막에 한 문장에 담겨 있는 것 같다. “10년이란 세월은 아직 형제들의 수령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일까?” 정 의원의 색깔론 공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한 교수의 글을 두고 북쪽에서 “우리 수령님을 ‘극악무도한 전범’, ‘괴뢰집단의 괴수’라고 써? 상종하지 못할 X”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사실 정 의원 식의 ‘수법’은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그가 안기부를 지휘했던 시절만 해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 뒤에는 <조선일보> 등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의 글에 대해 ‘사상검증’을 시도할 때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컴백’한 5일은 공교롭게도 사상검증의 싱크탱크인 공안문제연구소가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다. 그의 ‘컴백’이 고독해 보이는 이유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김연주 하어영 인턴 기자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 의원의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너무 컸다’고 운운한 대목이다. “분명 김일성은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는 다시 없는 영웅이었다. 대중의 김일성에 대한 존경과 기대는 너무나도 컸다”는 표현이, 정 의원의 입을 거치면서 마치 한 교수가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너무 큰 것으로 붉은색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한 교수가 <한겨레21>에 기고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이란 글의 요지는, 굳이 몇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그에 대한 남과 북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갈라진 조국의 한쪽에선 민족의 태양인 반면, 다른 한쪽에선 극악무도한 전범이었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은 김일성 폄하에 앞장섰다. ‘가짜 김일성설’은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자라는 그늘에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민족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던 그의 면모는 가려져 있다. 최소한 김일성이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한 교수가 글에 담고자 했던 진심은 마지막에 한 문장에 담겨 있는 것 같다. “10년이란 세월은 아직 형제들의 수령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일까?” 정 의원의 색깔론 공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한 교수의 글을 두고 북쪽에서 “우리 수령님을 ‘극악무도한 전범’, ‘괴뢰집단의 괴수’라고 써? 상종하지 못할 X”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사실 정 의원 식의 ‘수법’은 군사독재정권 시절과 그가 안기부를 지휘했던 시절만 해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 뒤에는 <조선일보> 등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의 글에 대해 ‘사상검증’을 시도할 때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컴백’한 5일은 공교롭게도 사상검증의 싱크탱크인 공안문제연구소가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다. 그의 ‘컴백’이 고독해 보이는 이유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김연주 하어영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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