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한-EU FTA 비준안 4일 처리키로
여야가 오는 4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함에 따라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통과시킨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이 사실상 무력화되게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입점제한 거리를 현행 500m에서 1㎞로 늘리고, 법의 일몰시한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중소상인 보호 조처를 취한다는 조건으로 비준안 통과에 합의했지만 이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어서 애꿎은 상인들만 피해를 보게 될 판이다. 자유무역협정안에 따르면 소매업 분야의 추가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문병철 전문위원은 이미 ‘SSM 규제법과 한-EU FTA 관련 의견’에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소매업 분야를 개방한 탓에 기업형슈퍼를 규제하는 새로운 개정 법안을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유럽연합 협정의 7.7조, 7.13조를 보면, ‘구체적 약속에 따라 부여된 대우와 비교해 새로운, 더 차별적인 조치를 채택할 수 없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일명 ‘스탠드스틸’(Standstill·추가 보호무역조치 동결) 원칙이다. 이에 따라 한-유럽연합 협정이 발효된 뒤 기업형슈퍼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면 협정 위반으로 국제분쟁에 휘말릴 수 있게 된다. 한-유럽연합 협정 7.2조는 제소 대상이 되는 조처에 해당 국가 국회가 만든 법률을 포함하고 있다.
국회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와 유통법을 동시에 처리하더라도 유럽연합 쪽이 분쟁을 제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지난해 8월31일 브라이언 맥도널드 당시 주한 유럽연합 대사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자유무역협정을 이행하려는 시점에 중요한 (유통) 시장을 닫아버리는 것은 명실공히 에프티에이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한-유럽연합 협정 비준동의안을 심의하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유통법·상생법이 한-유럽연합 협정과 충돌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럽연합 쪽이 분쟁을 제기해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아주 신중한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상생법과 유통법을 강화하는 조처를 먼저 취할 경우 나중에 통과된 협정 비준안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우위에 서게 된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현행 유통법·상생법이든, 여야가 합의한 강화된 유통법이든 한-유럽연합 협정과 충돌하며, 국제법상 한-유럽연합 협정이 국내법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국내법 강화는 법률상 무의미하다”며 “유통법·상생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유럽연합 쪽의 별도 부속서한(side letter)이 없는 한 여야 합의로 유럽연합의 문제제기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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