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빈자리 이정희, 조승수 의원 등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원들이 4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된 뒤 의원들이 떠난 텅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밤 10시까지 마라톤회의 뒤 ‘본회의 불참’ 결론
사실상 처리 방관…야권과 정책합의 깨버린 셈
사실상 처리 방관…야권과 정책합의 깨버린 셈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이 4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킨 국회 본회의에 불참했다.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의에 이어 밤 10시께까지 이어진 ‘마라톤’ 의원총회를 통해 내린 결론에 따른 것이다. 이는 이날 본회의에서 동의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던 지난 2일 정부·여당과의 합의를 깬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도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다른 야 3당과 맺은 ‘정책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은 ‘합의를 지키라’는 한나라당의 공세와 ‘정책 합의를 파기했다’는 야 3당의 비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시종일관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였고 의사 결정 과정도 더뎠고 무기력했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는 내부 평가도 나왔다.
아침 8시30분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에선 이번 여야 협상을 주도한 박지원 원내대표를 제외하곤 정동영·정세균·이인영·천정배·박주선·조배숙·김영춘 최고위원 7명이 이날 처리하는 것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손학규 대표는 ‘유보’ 입장을 취했다. 원내대표에게 협상 권한을 위임한 뒤 가져온 결론에 대해 당 최고위원 대다수가 이를 뒤집는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8시간이 넘는 의총을 진행하는 중에는 36명의 의원이 나서 비준안 처리 찬성과 반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나 찬반이 엇갈렸다. 홍영표 의원은 “지금이나 6월이나 달라지는 상황이 없다. 지금 협상안이 최선이니 통과시키는 게 낫다”고 찬성론을 폈다. 반면 이종걸 의원은 “(한번 개방된 분야는 되돌릴 수 없는) 역진 방지 규정이 있어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를 강화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며 “본회의장에 가서 몸으로 비준동의안 통과를 막아야 한다”고 반대론을 폈다.
이날 박지원 원내대표와 손학규 대표의 미묘한 입장 차이도 눈에 띄었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여당과 협상 결과에 민주당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지만, 당의 뜻이 당장 처리하는 것에 반대한다면 당론에 따르겠다”며 섭섭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의총 초반 유보적 태도였던 손 대표는 결국 이날 오후 “비준에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두를 일도 아니다. 야 4당과 정책합의를 했고 피해 국민에 대한 대책 강구를 위해 시간을 갖자”며 반대론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4일 처리 불가 방침’을 당론으로 확정한 뒤에도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놓고 또 난상토론을 계속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않는 게 강한 반대 의사 표시”라고 주장했고, 박영선 의원 “본회의장에서 반대 토론에 나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토론 및 반대투표를 할 것인지, 회의장 입장을 거부할 것인지를 두고 결론이 나지 않자, 결국 이날 밤 9시30분께 손 대표가 상황 정리에 나섰다.
손 대표는 “본회의에 불참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겠다. 의원들이 받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제안했다. 몇몇 의원들이 반발했지만, 결국 밤 10시께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에 불참한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석진환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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