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회의장에 정성진 협의회 위원장(오른쪽),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민노 ‘선거구제 개선’-민주‘재·보선 대비’
‘가능성’ 변화 기류속 다른 셈법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다.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기존 정치구도의 새판짜기다. 2단계 실행 프로그램=노 대통령은 그동안 연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왔다. 청와대는 자체 여론조사 등을 통해 연정 지지율이 이미 5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연정과 관련한 자신의 구상을 각 당에 공식 제안하기 위한 분위기는 잡혀가는 셈이다. 노 대통령이 이를 토대로 내놓을 선거제도 개편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각 당마다 선호하는 방식에 차이가 나, 구체적인 내용 보다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이라는 포괄적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태도이다. 노 대통령의 한 참모는 8일 “두 당이 연정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1차적인 고비는 오는 11일부터 시작되는 민주노동당의 의원단 워크숍이다. 여기서 긍정적 신호가 온다면, 논의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의 상대로 특정 정당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현실 구도로 보면 민주노동당이 먼저 움직이고 민주당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민주노동당은 유동성이 높고, 민주당은 굳어있다”며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연정에 합류하면 민주당도 ‘개혁세력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선거제도 개편보다는 내년 지방선거를 포함한 각종 재·보궐선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 동참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민주당은 아직 문을 닫지도, 열지도 않은 상태”라며 “연합공천이나 후보단일화 등 연정을 받음으로써 잃을 수 있는 선명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급부가 주어진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노 대통령의 제안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한 참모는 “제 정파가 호응하지 않는다면 꺾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더이상 끌고 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에, 다른 참모는 “지금 당장 안 되더라도 남은 임기 2년반 동안에 연정은 계속 살아있는 것”이라며 “올해말이 되든, 내년초가 되든 노 대통령은 연정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중요한 법과 제도를 합의해가며 연정의 불씨를 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도 조율중=노 대통령과 가까운 참모들의 얘기를 모아보면, 노 대통령이 처음으로 연정을 자신의 화두로 잡은 것은 지난 6월초다. 올해초 김효석 민주당 의원에게 입각을 제의한 것도 비슷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연정이라는 구체적인 방도까지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6월초는 4·30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23 대 0으로 참패하고, 당내 분란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이다. 이 때부터 노 대통령은 진보성향의 한 대학교수와 얘기를 나누며 생각을 가다듬었고, 정무 기능을 하는 40대 참모들과도 자주 난상토론을 벌였다. 분열이 각국의 흥망성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학술적인 검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내부논의가 처음으로 당에 전달된 것은 지난달 24일 당·정·청 11인회의에서다. 대통령은 이때 작심하고 찾아가서 얘기를 꺼냈으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낯설어하며 반대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숙성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열린우리당쪽과 조율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며칠 못가 일부 언론에 연정 발언이 보도되자, 노 대통령은 “드러난 김에 공론화하자”며 편지도 쓰고 간담회도 열었다. 청와대와 여당이 삐거덕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연정 구상이 설익은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게 참모들의 설명이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의 조율도 최근에야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정치권 ‘연정론’ 메시지 해석 분분
“선거구제 개편” “내각제 염두” “연합공천 포석”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연정론’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먼저, 노 대통령의 의도를 ‘선거제도 개편’에서 찾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노 의원은 8일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선거구제를 개편하자는 게 노 대통령이 얘기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나라의 발전을 옥죄고 있는 지역주의가 소선거구제를 통해 정치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출이 가능한 형태로 선거구제를 고쳐 지역주의를 부수자는 것이다. 나아가 노 의원은 ‘국민투표’를 선거제도 개편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는 국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며 “뉴질랜드도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구제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1 대 1의 비율로 선출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이미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도 선거구제 개편을 노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로 읽어냈다. 그는 “현재의 소선거구제와 5년 단임 대통령제는 1987년 당시의 정치상황에서 만들어진 유산”이라며 “20년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했지만 선거제도와 지역정당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으나 모두 ‘여소야대’ 체제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 3당 합당, 의원 빼내기, 의원 꿔주기 등의 변칙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7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 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여소야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여대로 간다”며 강한 집념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극복과 내각제를 직접 언급한 점을 들어 ‘선거구제 개편과 내각제가 연결돼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내각제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5월 지방선거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2007년 대선에 대비한 ‘연합공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연정’이 장관 자리를 매개로 야당 지도부에 보내는 손짓이 아니라, 장차의 선거에 대비한 연합공천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밖에 오는 9월 정기국회에 대비한 단기적 포석이라는 풀이도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사안별 정책공조를 통해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개혁입법을 처리하려는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의 경우, 노 대통령의 발언 수위와 강도에 견줘 ‘모기 잡기 위해 칼을 빼는 격’이라는 반론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또 지지자 결집을 위한 것이라거나 레임덕(임기말 권한 누수)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발언의 파장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낮아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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