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18일 오전 청문회가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사진 오른쪽)이 들어서자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고성 오간 ‘조남호 청문회’
정동영 의원, 목숨끊은 노동자 사진 꺼내며
“장례식 갔나” “유족에겐 사과했나” 묻기도
여야의원 모두 ‘해외 장기체류’엔 강한 질타
정동영 의원, 목숨끊은 노동자 사진 꺼내며
“장례식 갔나” “유족에겐 사과했나” 묻기도
여야의원 모두 ‘해외 장기체류’엔 강한 질타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청문회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의원들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때마다 야당 의원들은 “저를 똑바로 보고 답변하시라”고 거듭 다그쳤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조 회장은 장기 해외체류, 정리해고 다음날 거액의 주주배당 등에 대한 비판에는 “사과한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여러 차례 사과했다. 한진중 경영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대부분 답변을 이재용 사장에게 넘겼다. 그는 “3000명의 실업자를 만든 실패한 경영자라는 것을 인정하겠느냐”는 홍영표 민주당 의원의 추궁에 반박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쏠린 국민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때문인지 목소리도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그동안 한진중공업에서 목숨을 잃은 분이 몇 명인지 아느냐.”(정동영 민주당 의원)
“두 분으로 알고 있다.”(조남호 회장)
정 의원은 고 김주익 한진중 노조지회장과 고 곽재규 조합원, 1991년 의문사한 박창수 한진중 노조위원장의 사진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 사람을 아느냐”고 차례로 물었다. 조 회장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2003년 정리해고를 철회하라고 85호 크레인에서 넉 달을 버티다가, 자신의 밥통을 올려주던 밧줄에 목을 맨 한진중 노조지회장이다.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매고도 회사가 끄떡도 안 할 때 죄책감을 느끼고 몸을 던진 조합원이다.”
정 의원은 두 사람의 합동 장례식 동영상을 상영한 뒤 “장례식에 가봤느냐”고 물었다. 조 회장은 “안 갔다”고 답했다. “유족들에게 사과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다.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인지 못했다”며 “질타를 받아들이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더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라.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말하자 조 회장은 “알겠다”고 답했다.
참고인으로 채택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정리해고가 철회될 때까지 한진중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 의원은 “조 회장은 김진숙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라”며 청문회 도중 휴대전화로 연결했다. 김 지도위원은 “제가 이 크레인에서 225일을 보냈던 것보다 더 절망한 게, 아까 그 사람들을 모른다고 하시나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곧 한나라당 의원들의 고함 속에 묻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고인으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뭐하는 짓이냐”, “쇼하는 거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김성순 환노위원장이 전화통화 중단을 요청했지만, 정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뭐가 그리 두렵냐”며 버텼다. 결국 10여분 동안 정회한 끝에 정 의원은 “양보하겠다”며 물러섰다. 정 의원은 대신 김 지도위원이 전날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국회 환노위 의원들께’란 편지를 봉투에 담아 조 회장한테 “꼭 읽어보시라”며 건넸다. 김 지도위원은 편지에서 “경영진들은 경영 실패의 책임은커녕 주식·현금 배당에 연봉까지 인상시킨 기업에서 왜 노동자들만 거듭 정리해고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조 회장의 장기 해외체류에 대해선 여야 모두 강하게 질타했다. 이범관 한나라당 의원은 “해외 출국했다가 귀국해 2주 동안 국내에 있을 당시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는 건 아주 부도덕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는 밤 12시까지 진행됐으나, 한나라당 소속 청문위원 8명 가운데 이범관·장제원 의원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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