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내용으로 본 한-일 외교전쟁
20일 공개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문서는 이 사건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파상적인 외교공세를 펼쳤음을 보여준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수세에 몰렸던 박정희 정부가 이를 통해 역전의 계기를 잡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 일본을 압박하라=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문세광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수사에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8·15 저격사건 특별 외교계획’을 마련해 실행에 들어갔다. 8월27일 외무부 아주국장은 “대한민국 국가원수 내외분 저격사건에 일본이 깊숙이 관련돼 있음에도 일본 정부가 석연치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만족할 만한 조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준엄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힌다. 이에 따라 외무부는 △일본 국경일 및 국가적 경사 축하사절 1등급 격하 △정부 간 정기적 공식회의 유보 △사할린 동포 송환과 원폭 피해자 치료센터 건립 등 현안 교섭 유보 조처를 시행한다. 정부는 또 국제법 학자들을 동원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일본인 (문세광의 일본인 여자친구) 요시이 미키코 인도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나선다. 8월21일 작성된 ‘대통령 저격사건과 관련한 대일 조처 방안’(시안)을 보면, 문세광 사건과 유사한 사례로 1833년 나폴레옹 3세 암살미수 사건을 집중 검토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까지 공론화해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했다. ◇ 총련을 불법화하라=정부의 외교공세에는 이참에 총련의 반한활동을 봉쇄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문세광-총련-북한 연계설을 주장한 정부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총련에 대한 사법적 조처를 회피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8월30일 우시로쿠 주한 일본 대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일본 정부가 조총련을 불법화하거나 상응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조총련을 비호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따진다. 그는 이어 “사토 전 총리와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은 두 나라의 제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며 “이번과 같은 사건이 겹치면 신념만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단교 가능성까지 들먹인 것이다.
총련을 둘러싼 한-일 갈등은 다나카 일본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보낼 친서에 총련 규제를 명시하느냐 마느냐 문제로 증폭됐다. 박 대통령은 “친서에는 조총련이란 문구와 한국 전복 활동을 규제해야 된다는 언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11일까지 아무런 회답이 없다면 특별성명을 발표하겠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다나카 총리는 12일 ‘조총련’이란 문구가 빠진 친서에 서명하고 미국으로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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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북 연결고리’총련봉쇄 요구
일본 불법화 거부뒤 미국이 중재
미국 “관계깨지면 한국방위 어렵다”
◇ 한국 방위가 어려워진다=박정희 정부는 친서에 총련 문구를 넣는 데 대해 일본이 미적거리자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한-일 관계가 악화돼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중재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하비브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9월4일 주미 한국대사로부터 대일 영향력 행사 요청을 받고 “포드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하겠다”며 “미국은 우방인 두 나라가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면서 “조용히 일본의 답변을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고 덧붙인다. 이에 김동조 외무부 장관은 9월9일 에릭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만나 “다나카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 친서를 보내지 않는다면 주일 한국대사 소환, 장관 사표 제출, 주일 공관 철수를 단행하겠다고 일본 대사에게 밝혔다”고 재차 경고한다.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러나 하비브 차관보는 9월12일 자신을 찾아온 박근 주미공사에게 “미국은 할 만큼 했다”며 한국의 요구를 거절한다. 박 공사는 이를 정부에 보고하고 한시간 뒤 하비브에게 전화를 걸어 “몇시간 안에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국시간으로 9월13일 ‘예정된 코스’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버텼다. 하비브는 이에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려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 천황이 저격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미국의 중재가 사실상 실패하고, 일본의 친서에 총련이라는 문구가 빠지자 박정희 대통령의 불만은 폭발한다. 박 대통령은 9월19~20일 특사로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 당시 자민당 부총재에게 “일본 측에서 법적, 도의적인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것은 정치, 외교, 법을 떠나 동양적 예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따진다. 박 대통령은 이어 “한국에서 출생해 한국 불법단체의 배후조정을 받고 한국인 여권으로 입국한 사람이 일본 천황이나 총리를 저격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일본 측 태도는 한국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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