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9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 조사를 마친 뒤 귀가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hani.co.kr
총선 3개월앞 ‘대형뇌관’ 터지자 공포 휩싸여
정몽준·안상수·홍준표 전 대표들도 불편한 눈치
권영세 “검찰 수사 밝혀지면 당 차원 사과해야”
정몽준·안상수·홍준표 전 대표들도 불편한 눈치
권영세 “검찰 수사 밝혀지면 당 차원 사과해야”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폭로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정당판을 뒤흔들 대형 뇌관으로 번질 조짐이다.
고 의원이 8일 검찰에서 박희태 국회의장 쪽으로부터 돈봉투를 전달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 현직 국회의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또 고 의원이 돈봉투의 전달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동료 의원에게 지목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밤 고 의원의 진술 내용이 알려지자 공황 상태에 빠졌다. ‘공공연한 비밀’로, 알면서도 감춰왔던 정당정치의 치부가 동료의원의 내부 고발로 폭로되면서 ‘금권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이날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서도) 아주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검찰 수사에서 어느 정도 밝혀지면 당이 사과해야 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문제있는 인사가 당과 직접 관련이 제기될 거라고 보는데, 그때그때 단호하게 대처해 과거의 낡은 정치와 결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출신의 박희태 국회의장 쪽은 물론 당시 전당대회 캠프 실무자 등과 신속하게 선을 그으며 당으로 옮겨올 ‘충격파’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달 뒤로 다가온 총선에 매달려 있는 의원들은 그야말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장제원 의원은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은 사실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이걸로 바로 인식하게 된다. 한나라당은 끝났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이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역 유권자들이 비꼰다. 한표 두표 모으면 뭐하냐. 정말 참담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이제 겨우 시작이란 점이 더 공포스럽다는 분위기다. 권 사무총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고 의원의 검찰 진술을 통해 ‘돈봉투’의 주인이 박 의장 쪽이란 사실을 비로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수희 의원은 “수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국민들이 믿겠느냐. 그대로 총선 부담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수사가 진행되고 연루 의혹이 구체화되면서 한걸음 한걸음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몽준, 안상수, 홍준표 전 대표 등 18대 들어 한나라당 당권을 거머쥔 당내 실세들은 ‘고승덕 폭로 사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극도로 불편해하는 눈치다. 진위를 떠나, 과거의 전당대회에서 비일비재했던 방식이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당으로선 불행한 일이다”라며 “지난해 전당대회 때 떨어져도 좋지만 매표행위는 안 된다고 참모 의원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야당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는 “누구는 받고, 누구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머물지 말고 근본적 쇄신을 해야 한다”며 “야당도 호재를 만났다고 할 사안이 아니다. 국민이 야당은 깨끗하다고 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인택 송채경화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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