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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한겨레 프리즘] 각하가 돌아왔다 / 김용철

등록 2012-02-26 19:38수정 2012-02-26 19:39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세 개의 별실
그 너머에
MB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입구에 개관 축하 펼침막이 내걸렸다. 그 앞엔 화환이 줄지어 섰다. 고관대작들이 보낸 것들이다. 각하가 살아 있을 때를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상화가 손님을 압도한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이답다. 오른편엔 재임중 이룩한 치적이 연대순으로 벽면을 채웠다. 눈에 띄는 한마디. ‘하면 된다’. 박정희기념관엔 세 개의 별실이 있다. 첫 번째 별실은 ‘오일륙’, 두 번째 별실은 ‘새마을’,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세 번째 별실.

첫 번째 별실 ‘오일륙’. 부하들을 데리고 도읍을 장악한 사건을 기념하여 이름붙였다. 반란을 통한 권력 장악엔 명분이 필요했다. 이름하여 ‘빨간딱지’. 반공을 ‘제1 혁명공약’으로 내건 액자가 별실 한가운데 붙어 있다. 그 옆에 놓인 각하의 저서엔 이렇게 쓰여 있다. “본인은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 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총을 곁에 두었지만, 오일륙의 동기는 순수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은 그날의 거사를 ‘혁명’이라고 불렀지만, 후세 사람들은 이를 ‘쿠데타’로 기록한다.

두 번째 별실엔 흥겨운 가락이 넘쳐흐른다. 외국의 백과사전에도 실렸다는 각하의 역작 ‘새마을운동’. 잠시 그 가락을 감상해 보자.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국민정신을 개조한다며 만든 노래다. 이 가락이 방방곡곡에 퍼졌고,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지 입에서 모두 흥얼거렸다. 굼벵이가 살던 초가지붕은 슬래브로 발빠르게 대체됐다. 지금은 발암물질로 알려진 ‘석면’을 앞다퉈 지붕에 올리는 일이 벌어졌으니, 권력자의 무지함을 탓해야 하나 과학기술의 수준을 탓해야 하나.

‘별실의 꽃’ 중앙홀은 그의 치세 기간의 치적이 삼면과 바닥에 휘황찬란한 불빛과 함께 웅장함을 과시한다. 돈의 위력이 실감나는 곳이다. 제3 별실은 그의 대인배적인 면모를 한껏 추어올린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고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나라를 지도했다는, 마치 우상화에 열을 올리는 듯한 녹음방송이 쉴 새 없이 귓전을 때린다. 정면의 사진 속에는 첫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그의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도 눈에 띈다.

그러나 기념관엔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억압과 독재의 기록이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던가. 많은 사가들은 각하의 시대를 이렇게 기록한다. 유신과 장기독재, 인권 탄압, 민주주의 질식의 시대였다고.

박정희기념관을 나오며, 취임 4주년 기자회견을 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졌다. ‘내가 옳다’는 신념이 빚은 아집과 독선, 불통. 지난 4년, 새마을운동을 방불케 하는 4대강 속도전으로 토건 재벌을 살찌워놓고 국민 앞에 이렇게 말했다. “경쟁에서 이긴 자만 살아남는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서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시대적 가치입니다.”

과연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 대통령 집권 4년 동안 30대 재벌 계열사 수는 359개가 늘어 1150개에 이르렀다. 1월 말 10대 재벌 계열 90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이 대통령 집권 기간 10% 증가했다. 반면 전체 가구의 25%는 최근 5년 동안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훗날 이 대통령의 기념관엔 어떤 미사여구로 지금의 현실이 치장돼 있을까.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yckim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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