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이제 기무사나 국정원이 과거처럼 정치 사찰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같은 비밀 사찰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20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 그동안의 의혹에 대해 거세게 부인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장세동처럼 행동하는 그를 보며
윗선 ‘전두환’은 누굴까 떠올리게 돼 “동물학적으로 깃털과 몸통을 구분해 말하는데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이거다. 원래 ‘깃털’들은 ‘몸통’을 자처한다. 15년 전에도 그랬다. 1997년 문민정부 말기에 터진 한보 특혜 의혹 사건에서 당시 홍인길 신한국당 의원은 ‘깃털-몸통 일체론’을 폈다. 닭도 털을 뽑아야 치킨이 된다는 상식을 저버린 것이다. 그는 “왜 자꾸 (나보고) 실세라고 하나. 나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깃털론’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몸통의 실체를 떠올리게 했다. “깃털이라는 말은 나 자신이 실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실세라고 부르는 데 대해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한보 특혜대출에 다른 배후가 있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깃털은 몸통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요즘 말로 ‘지능적 안티’의 선구자인 셈이다. 홍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 마을인 경남 거제군 외포리 출신이다. 신임이 두터웠고 핵심 실세가 됐다. 특혜대출의 ‘마지막 배후’가 자신이라며 ‘깃털은 곧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깃털의 임무는 몸통을 보호하는 것” “제2의 장세동이 되려 한다”는 비판에도 끄떡없었다. 몸통 주장에 “소가 웃을 일” 반응 지난 3월20일, 몸통이라 참칭하는 이가 또다시 나타났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중간 책임자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영호(48)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주인공이다. 불법사찰 증거인멸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첫 보도(901호 표지이야기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 해명할 차례다’ 참조)와, 이어진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 주무관의 잇단 폭로로 청와대가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 전 비서관은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료 삭제에 관한 한 모든 문제는 내가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삭제를 자신이 지시했고 ‘또 다른 배후’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로 끝, 여기서 끝내자는 얘기다. 하지만 그의 몸통론은 또 다른 몸통을 부르고, 몸통에 이어 지시를 내린 머리통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지능적 안티라기보다는 그냥 안티에 가깝다. ‘범포항’ 출신인 이 전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 인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실형을 살고 나온 이인규(56) 전 공직윤리지원관, 불법사찰 ‘몸통들’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박영준(52) 전 총리실 국무차장과 같은 인맥이다. 지원관실은 이명박 대통령의 비선 조직이며, 그 때문에 이른바 경북 영일·포항 출신(영포라인)들로 불법사찰 조직을 꾸렸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몸통이라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전 비서관은 “자료 삭제는 증거인멸이 아니다” “민간인 불법사찰로 왜곡하는 것은 현 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민주통합당의 정치공작”이라는 자기분열적 발언도 내뱉었다. 궤변이다. 하지만 단말마의 ‘몸통 주장’은 2010년에 이뤄진 기존 검찰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단적으로 증명한다. 동시에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수사’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싣는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20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