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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DJ 가신’ 권노갑에 YS 메시지 전달 / 한완상

등록 2012-10-17 20:03

1998년 1월초 필자는 병보석으로 입원중인 권노갑 전 의원을 찾아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에게 협력을 바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새 정부에 바라는 제언을 글로 정리해 건넸다. 사진은 96년 1월 동교동 가족모임으로, 왼쪽부터 권 전 의원, 김대중 당시 총재와 부인 이희호씨, 김상현 전 의원이다.
1998년 1월초 필자는 병보석으로 입원중인 권노갑 전 의원을 찾아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에게 협력을 바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새 정부에 바라는 제언을 글로 정리해 건넸다. 사진은 96년 1월 동교동 가족모임으로, 왼쪽부터 권 전 의원, 김대중 당시 총재와 부인 이희호씨, 김상현 전 의원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12
1998년 새해를 맞자마자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메시지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권노갑 전 의원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사촌동생인 한용상 전 <기독교방송> 정치부장을 통해 그가 지난달 30일부터 병보석으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한보특혜비리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어 있던 중 신병치료차 형집행정지를 받은 상태였다. 마침 심재권 박사(현 민주통합당 의원)가 세배하러 찾아왔다. 그가 권 전 의원과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빠른 시일 안에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1월5일, 병원을 찾아가 건강해 보이는 권 전 의원을 만났다. 우선 나는 디제이의 대통령 당선이 지닌 역사적 행운과 기회에 대해서 얘기한 뒤, 김 대통령이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여러 각도에서 풀어서 알려주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정치·역사적 과업이라는 점을 또한 강조했다. 개혁전쟁의 성공을 위해 무엇보다 청와대 안에 지휘상황실이 필요하다는 점을 각인시키려 했다. 권 전 의원은 내게 오늘 얘기한 내용을 종이에 적어달라고 했다. 나는 퍽 망설였지만 ‘A4’ 용지 8장으로 요약해 그에게 전달했다. 대강의 요지는 이렇다.

‘지금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체제라는 객관적 경제위기가 김 당선인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정치적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냉엄한 구조개혁 또는 자기 비리를 깎아내는 구조조정을 경제주체가 결단해야 하는데 이번 위기 같은 경제비상상태로 그런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쿠데타가 일어난다 해도 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운데, 이번 위기로 국민의 성원과 세계의 지지를 받으며 경제주체들로부터 과감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가가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못지않게 공공성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경제번영과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시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동서화합과 남북관계 개선을 함께 추진하되, 남북관계 개선을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삼아 그 효과를 창출해내야 한다. 이번 경제위기는 김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고통을 안겨주었으나, 당선인에게는 모든 국민들의 고통분담을 끌어내면서 새로운 한국의 번영과 평화를 구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어 나는 와이에스가 참으로 딱한 상황에 놓여 있는 지금, 디제이가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함을 강조했다. 와이에스가 이인제 후보를 의도적으로 견제하거나 통제하지 않은 덕분에, 이회창 후보에게 갈 표를 챙김으로써 디제이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디제이가 이 사실을 명심해주기를 바라는 와이에스의 뜻을 전했다.

지금 김 대통령의 아들(현철)은 구치소에 갇혀 있다. 앞으로 청문회에 불려나갈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디제이는 와이에스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더 성숙하고 바람직한 관용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5년 전 와이에스는 디제이를 매정하게 무시했지만, 이제 디제이가 그를 너그럽게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새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위기를 더욱 효과적이고 정당하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권 전 의원도 내 설명에 수긍하는 듯했다. 나는 디제이가 와이에스보다 한 수준 더 높은 도덕적 지도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메시지를 반드시 디제이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내친김에 나는 그에게 와이에스가 해내지 못한 정치개혁을 디제이가 훌륭히 해내기 위해서 지녀야 할 몇 가지 새로운 정책적 인식에 대해 설명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첫째,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설득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혁 지도자에게는 혁명 지도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내공과 자기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둘째, 개혁 주체 또는 개혁 몸통은 더욱 단단하고 또 커야 한다. 개혁은 지도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성공적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개혁 몸통의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만일 디제이가 ‘심기경호’의 달인들이나 성격 좋은 냉전보수 인사들을 주로 참모로 활용한다면 5년 뒤 지금의 와이에스가 겪고 있는 전철을 따를 수도 있다. 당당하게 “아닙니다”를 말할 수 있는 동지요 전문가를 참모로 중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참모들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해야 한다고 나는 덧붙였다. 다소 긴 얘기였지만 반드시 디제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나는 병실을 나왔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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