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앞장선 전임 국정원장들 소환에 불쾌” 반응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도청이 있었다는 국가정보원 발표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 쪽은 9일 “모독이나 음모 공작은 국민의 정부가 당했다”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모욕이다. 검찰수사를 지켜보자”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다.
김 전 대통령 쪽의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이날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께서는 과거 안기부 ‘미림’팀의 불법도청은 흐지부지되고, 불법도청의 책임을 왜 ‘국민의 정부’가 다 뒤집어쓰고 있는지 참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난감하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이어 “그 분(김 전 대통령)이 불법도청의 최대 피해자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국정원의 이해할 수 없는 발표 이후 하루 아침에 ‘가해자’가 되어 본말이 뒤집혔다”며 “미림팀의 수천개 도청테이프와 불법도청 행위는 다 어디로 갔느냐”고 반문했다.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심기가 아주 좋지 않다”며 “이 문제에 대해 때가 되면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 쪽은 검찰이 조사 방침을 내비친 ‘국민의 정부’ 역대 국정원장 4명도 적극적으로 감쌌다.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그분들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며 “특히 국정원 개혁에 앞장선 역대 원장들이 하루 아침에 검찰에 소환되는 신세가 된 것 자체를 불쾌해 한다”고 전했다.
당사자들인 역대 국정원장들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며, 불법도청 자체를 강하게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천용택 전 원장은 “(불법 도청과 관련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측근은 “천 전 원장은 불법도청 지시를 한 일이 없으며, 설사 밑에서 불법도청을 했다고 해도 전혀 몰랐을 것”이라며 “정보를 보고하는 부서장들에게 ‘도청을 해서 얻은 정보냐’고 물어볼 원장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불법도청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발표된 신건 전 원장은 이날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상황이 아주 안 좋게 돌아가는 것 같다”며 “내깐에는 여러군데 물어보고 도청 중단을 지시했으나, 구체적으로 도청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끼리의 통화는 지금도 절대로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며 “정부가 도청에 대해 명확히 구분해서 설명해줘야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이종찬 전 원장은 지난 5일의 국정원 발표 이후 “불법도청은 절대 한 일이 없다”며 버럭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오는 20일께 귀국할 것이라고 측근들이 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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