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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ㅂㄱㅎ의 ‘데스노트’

등록 2013-02-18 15:43

부글부글
평범한 정치인이었던 박근혜. 그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아버지를 두고 있었지만, 매일매일 단조롭게 반복되는 자신의 어휘와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뻔한 인맥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수첩 하나가 박근혜 앞에 떨어진다. 수첩에 이름과 관련 의혹이 적힌 자는 반드시 낙마한다는 공포의 수첩 ‘데스노트’였다. 박근혜는 데스노트를 이용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어 세상의 2인자들을 차례차례 낙마시켜나간다. ‘수첩공주’의 탄생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박 당선인이 지명만 하면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속출하자 정치권과 언론은 비상사태에 빠진다. 그리하여 우유를 좋아하는 천재 명기자 스페셜K가 나서는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수첩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오로지 박 당선인 자신만이 볼 수 있다. 남들은 ‘밀봉’이라 욕하지만 이유가 있다. 그것을 만진 자는 ‘낙마신’, 즉 낙신을 보게 된다는 소문이다. 수첩 내용에 별게 없어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대통령 당선 뒤 수첩의 첫 번째 희생자는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였다. 수첩에 적힌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2013년 1월4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삼성동 금융연수원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인수위원 발표 기자회견은 4분도 넘기지 않는다. 김용준 위원장이 위원들 이름을 한 차례 읽고 끝내버린다.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를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으로 임명한다. 질문도 받지 않는다. 기자들이 ‘이게 뭐냐’며 웅성웅성한다. 최 교수는 1월13일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인수위원직에서 갑자기 사퇴한다. 그 뒤로 완전히 사라진다. 기자들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데스노트의 위력을 실감한 이들은 몸서리를 쳤다. 두 번째 희생자는 최 교수 낙마의 영매가 된 김용준 위원장이었다. 수첩 내용은 이렇다 한다. ‘2012년 10월11일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 소장을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발표한다. 2012년 12월27일 김 위원장을 다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임명한다. 2013년 1월24일 국무총리 후보로 김 위원장을 지명한다. 3연타 트리플이다. 언론에서 책임 총리가 아닌 대독 총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곧이어 부동상 투기, 아들 병역 문제가 터져나온다. 다 해명하겠다더니 1월29일 적격 사퇴한다. 될 대로 되라’

낙신의 저주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것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였다. 수첩에는 이 후보자 관련 의혹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전한다. 열댓 장으로도 부족해 낙마신이 수첩 속지를 새로 내려줬다는 얘기도 들린다. ‘2013년 1월3일 MB와 상의해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헌재 소장 후보자로 정한다. 지명부터 난리가 난다. (부적절한 처신이 너무 많아 생략) 국무총리 후보자와 헌재 소장 후보자 지명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지만 데스노트의 존재를 숨기기로 한다. 1월30일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털기식으로 간다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말한다. 2월6일에도 ‘인사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과도하게 상처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듯이 뒤로 빠진다. 2월13일 버티던 이 후보자가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한다. 그럴줄 알았다.’

박 당선인은 문제가 있는 걸 알고도 일부러 이런 사람들을 뽑는 것일까. 앞으로 데스노트의 희생자들이 줄줄이 줄을 섰다. 데스노트 없는 기자들만 피곤한다. 취재수첩 말고 데스노트 어디 없나.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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