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부실인선 사과문’
비서실장 명의·대변인 대독
박대통령 책임 전혀 언급안해
비서실장 명의·대변인 대독
박대통령 책임 전혀 언급안해
청와대가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부실 인선’에 대해 무성의한 사과문을 내놓으면서, 이번엔 ‘부실 사과’ 논란이 일고 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30일 오전 ‘새정부 인사와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하여서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73자짜리 두 문장이 전부였다. 사과문은 ‘허태열 인사위원장’ 이름이었지만, 이마저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17초 동안 읽은 ‘대리 사과’였다.
사과문 어디에도 ‘인사 난맥’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없었다. ‘허태열 인사위원장’ 명의로 발표된 사과문에는 향후 인사시스템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검증 체계 강화’라는 원론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담았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아닌 인사위원회로 책임을 돌리려고 인사위원장 이름으로 사과를 했으면서도, 청와대는 ‘인사위 구성은 공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1일 “(인사시스템 보완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은 외부인을 인사위에 참여시킬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날까지 ‘사과는 없다’고 버티던 청와대가 주말인 토요일 오전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오후에 예정된 ‘당·정·청’ 워크숍에서 여당 의원들의 비판을 무마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허태열 실장의 형식적 사과→인사 논란 정리’를 염두에 두고 청와대와 여당이 미리 각본을 짰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까지 제기했던 친박 의원들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정작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참모들을 질책하는 데 그쳤다. 박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거나, 인사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돌직구’는 등장하지 않았다.
워크숍이 끝난 뒤 여당 내부에선 무력함을 토로하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사과 형식과 내용 모두 말도 안 된다. (박 대통령이) 비서를 시켜서 사과를 하는데, 그 비서(허태열 실장)가 또 비서 비슷한 사람(김행 대변인)을 통해 한 것이다. 떠넘기는 모양새가 되게 안 좋았고, 여당 의원들도 잘못된 거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당·정·청 워크숍에서 국민과 소통을 통해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결의는 없고, 불통의 현실을 잠시 모면하자는 목소리만 넘친 것 같아 보였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국민과 소통하려면 ‘17초 대독 반성문’으로 얼렁뚱땅 넘기려 들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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