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문턱에 들어선 제주도에는 꽃이 만개해 있었다. 세련된 관광도시의 느낌을 주는 제주시내 도로가엔 벚꽃이 흐드러졌고, 해군기지 공사가 한창인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마을 해안에도 노란 유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지난 4일 해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제주 해군기지(민·군복합협관광미항) 건설 현장엔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었다. 15만t 크루즈선이 정박할 부두인 남방파제(길이 1076.2m)와 서방파제(420m)가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고, 잠수함과 중소형 해군함정이 정박하는 동방파제에는 파도로부터 방파제를 보호하는 잔석을 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해안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방파제의 외벽에 설치돼 파도를 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인 딤플과 테트라포트 수백개가 정렬돼 있는 광경이 압권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7월 이전엔 남방파제와 서방파제를 잇고, 동방파제의 잔석 붓기 공사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기지의 공정률은 30% 정도다.
공사는 진행 중이지만, 해군기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공사 현장으로 연결되는 두개의 출입문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 단체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공사용 트럭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천주교의 일일 미사도 여전했다. 해군은 “주민들의 결속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들은 지난달 26일 해군기지에 근무하게 되는 군인용 관사 건설을 위한 사업 설명회를 실력으로 무산시켰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곳은 태풍이 들어오는 길목이다. 무리하게 항구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엔 지난해 8월 태풍 볼라밴에 의해 날아간 케이슨(방파제의 뼈대가 되는 콘크리트로 만든 상자형의 구조물)이 지금껏 방치돼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평화·군축과 안보라는 두 개의 양립하기 힘든 가치가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지점에 놓여 있다. 현장의 해군 관계자들은 “애초 이곳은 군항 터”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제주도와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민·군복합형 항구로 계획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해군·제주도·평화단체·주민들은 이곳에 15만t 규모의 크루즈선 두 척이 접안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오랜 시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결국 지난 2월 한국해양대학교의 시뮬레이션 결과 27노트의 풍속에도 15만t급 크루즈선 두 척이 정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2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밖에 주변의 천연기념물인 문섬·범섬(421호)과 연산호 군락(442호) 등에 대한 환경 파괴 논란도 여전하다.
해군은 2015년 말 기지가 완성되면 부산에 있는 기동전단을 이곳에 배치해 유사시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기동전단은 이지스 구축함, 한국형 구축함(KDX), 잠수함, 대잠 해상초계기(P-3C) 등 해군을 대표하는 최강 전력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 해군이 연근해 방어의 틀을 벗어나 ‘대양해군’으로 첫발을 떼는 상징이 된다.
그러나 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2005~2007년 평택 미군 기지 확장 과정에서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른 우리 사회가 당시 경험으로부터 배운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종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현장대응팀장은 “해군은 사업 시작 단계부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았고, 주민들의 반대에도 밀어붙이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주민들의 반대가 여전해 완공은 물론 주변시설 건설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6일 마을에서 4·3항쟁 65주년 평화기행 및 평화문화제를 열었다. 마을 어귀에는 “해군기지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펼침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기지는 완성되겠지만, 그로 인해 우리나라가 더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가 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제주/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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