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15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북면 충남도청 새 청사 집무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소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커버스토리]안희정 충남지사 인터뷰
▶ 안희정 충남지사는 1989년 1월 당시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 비서관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정치 인생 24년째를 맞는 안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 출마 전까지 지도자와 주연이라기보다 참모와 조연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앞두고 안 지사를 만나봤습니다. ‘노무현의 적자’를 넘어 ‘정치인 안희정’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는 참여정부 5년과 노무현, 그리고 친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듯
특권과 반칙이 여전할 때
우리는 노무현을 떠올린다 친노라는 이름으로
이득 보려는 정치도 말고
과거를 공격해서 덕보려는
정치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못난 후손의 전형 “안희정 당신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달라.” ‘친노와 비노’, ‘참여정부의 공과’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간 뒤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을 잘랐다. 안 지사는 ‘노무현’으로부터 ‘안희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인간적 의리와 도리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 안희정’으로서 “대한민국이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뛰어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5월23일)를 맞아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안희정 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신을 가리켜 ‘노무현의 적자’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봉건시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표현이 너무 안 좋다”는 말도 했다. 안 지사 인터뷰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약 2시간30분간 진행됐다. 안 지사는 내년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나설 것인지 묻자 “말을 아끼겠다”고 대답했다. 2017년 대권 도전에 대해서는 “그만한 역량과 기대가 모인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갑을관계에도 역사는 전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에 대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소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야 기분좋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노 대통령이 공적 업무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말씀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정쟁과 싸움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났다는 해방감의 표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온전히 기념할 수 있게 그분을 역사 속으로 잘 놓아드렸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역사 속에 놓아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건가? “그렇다. 아직도 보수 진영의 많은 분들은 친노-비노 프레임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우리 쪽을 분열시키려 하는데, 사실 이런 공격이나 과거 민주당을 호남정권이라고 공격했던 것이나 지나치게 정략적·정파적 논리다. 지난 5·4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많은 분들이 모두 김대중-노무현을 잇겠다고 선언했는데도 굳이 친노-비노를 가른다.”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도 있을 텐데?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각각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각각 단독정부 수립과 국가적 경제부흥전략 추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랐다. 다만 두분 모두 집권 말기 부정선거 등 선거제도 무력화나 유신헌법을 통한 장기집권 획책 등의 오점도 남겼다. 그 뒤 김대중 정부는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책무를 잘 마무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시대적 과제는 특권과 반칙 청산이었다. 노무현은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특수한 권력 및 신분을 용납하지 말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었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 등을 통해 드러난 갑을관계의 폐해를 보면, 특권과 반칙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볼 때 그건 지나친 자학이다. 대한민국은 잘 전진하고 있다. 물론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가,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가, 이렇게 따지면 아직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억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듯, 특권과 반칙이 여전할 때 우리는 노무현을 떠올리지 않나.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가치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한 노 대통령의 민주주의적 리더십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꼭 필요한 가치로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전진하고 있다’는 말은 공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고통과 과제가 없는 시대는 없다. 오늘 청소했다고 내일은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질곡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조금씩 진전된 과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내하청의 문제,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조리한 갑을관계의 문제보다 더 큰 기득권 질서와 싸워야 했다. 예전에 갑을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겠지만 이제는 ‘그건 옳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역사의 진전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이 된 분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으로 끊임없이 편가르기 했다는 지적을 일부로부터 받기도 한다. “노무현 리더십을 편가르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 대통령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 지점은 정말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과거 노 대통령이 군 장성에게 아주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똥별들만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마음 아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대한민국을 위해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 아니었나. 자주국방을 외친 지가 언제인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한미연합 전력에 계속 의존해야 하나.” -1980년대 운동권 시절, 안 지사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렇지 않나. 아무리 바람직하고 옳은 가치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당위성만 강조하면 안 된다. ‘불통’은 그래서 빚어지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그분을 모셨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담히 하기란 참 쉽지 않다. 다른 분들이 그런 평가를 하면 나도 ‘맞아, 그분 리더십에서 그런 건 부족했어’ 이렇게 회상하게 된다. 그걸 내가 직접 대답하기는 참 마땅치 않다.”
노 대통령 무덤 풀 무성하면 내가 욕먹지만…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신의 인생에서 패배를 인정한 일은 두번이다. 고대 83학번 시절의 안 지사는 운동권의 핵심이었다. 2학년이 되자마자 그는 84학번 새내기 후배 3명을 소개받았다. 안 지사의 임무는 이들 3명을 잘 키워서 핵심 지하운동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안 지사는 실패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들에게 바란 것은 혁명투사의 모습이었지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집안이 부유하거나 사회적 진출이 보장된 좋은 학과에 다니고 있었기에 도리어 학생운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들의 회의와 의문을 포용하고 찬찬히 설득하기보다는 무조건 뭉개버렸다. 당연히 나는 후배들로부터 진심어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했다.”(안희정, <담금질> 51쪽) 안 지사의 84학번 후배 3명은 1984년 말 고향집에 내려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안 지사는 <담금질>에서 84학번 후배 3명을 가리켜 ‘첫 시련이자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첫 패배였다.
-노무현 시대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듣겠다.
“그 시대에 미처 청산하지 못한 특권과 반칙의 문제가 남아 있다. 세계화에 따른 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가져온 많은 이들의 고통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그 문제를 풀었어야 했는데 사실 노무현 시대에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내어 해결하기란 불가능했다고 보인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 등에 따른 실업대책과 4대 보험, 국민기초생활수급제도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이야기가 왜 길어지냐면 그거 흠잡으면서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하는 말은 친노라는 이름으로 이득 보려는 정치도 하지 말고, 과거를 공격해서 덕 보려는 정치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게 모두 못난 후손의 전형적 모습이다.”
-안 지사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인가?
“당연하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적자’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참여정부 시절 책임있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모신 적이 없는 나를 가리켜 ‘노무현의 적자’ ‘리틀 노무현’이라고들 하는데, 분명한 사실은 내가 앞으로도 노 대통령을 제대로 못 모시면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닌 거다. 봉하마을에 있는 노 대통령의 무덤에 풀이 무성하면 사람들은 나를 욕할 수밖에 없다. 내가 노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인간적 의리와 도리만큼은 놓치지 않고 하겠다. 다만 내가 어떤 정치를 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정치인 안희정 앞에는 사회 양극화와 세계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성장전략, 그에 따른 복지제도, 대북정책 등에 관한 현실과 미래의 과제가 놓여 있다. 나는 대한민국이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뛰어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 여야 정치인 모두 대한민국이 적법하고 합법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공격하고 폄하함으로써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안 지사의 바람과 달리 현실 정치에서 ‘친노’라는 표현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안희정 당신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달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노무현의 정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면 그걸로 끝, 이랬으면 좋겠다. 현재의 정치가 과거에 대한 평가에 매달려 있으면 대한민국 역시 계속 과거에 발목잡히게 돼 있다. 과거 노 대통령을 좋아했든 싫어했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이다. 내가 정말 제안하는 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해 최소한의 존경심을 갖고 예우해달라는 것과, 민주당을 포함한 현실 정치인이 현재와 미래의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친노라는 용어는 일종의 ‘낙인’으로 통한다. 그게 불편하고 두려운 것은 아닌가?
“나는 민주당이 대선 후보로 세워 당선시킨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하겠다고 민주당 최고위원이 됐고, 지난번 지방선거 때도 두분의 정신과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공약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친김대중, 친노무현이다. 어느 집 자손이냐가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이 프레임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친노냐 비노냐에 얽매여 있는 것은 우리가 현재 풀어야 할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를 포함한 진보진영에 묻는다. 통상개방 전략은 어떻게 가야 옳다고 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전면 재검토해 폐기하자는 것이 진보진영의 입장인가. 이런 의제에 대해 합의된 건 하나도 없으니 에프티에이 추진한 쪽은 친노, 아니면 비노라는 식으로 싸우게 되는 것 아닌가. 대체 친노냐 아니냐, 이 논쟁이 포괄하는 건 뭔가. 에프티에이 어떻게 할 거냐,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한 네 태도는 뭐냐 등 정책을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 좋아해서 ‘같이하자’ 했던 것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절반에 가까운 48%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대선 이후 무기력한 모습을 계속 보여왔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율(12%)은 새누리당(2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5월16일 발표) 민주당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국민이 정당과 정치,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비전을 못 만들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신뢰를 잃어버린 과거 10년의 역사가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 분열의 역사가 지지자에게 많은 실망을 드린 것이다. 조금만 불리하면 도망가고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다시 몰려드는 이합집산의 정치가 신뢰라는 자산을 까먹었다. 이런 우리 내부의 문제가 가장 크다. 우리를 지지했던 많은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도 하나 있다. 우리는 1990년 3당 야합의 덫에 여전히 걸려 있다. 3당 야합 이후 우리 민주당은 호남에 갇혀버렸다. 조금 외연을 넓히려고 디제이피(DJP) 연합도 하고 김중권 비서실장(영남 출신)도 세워보고 영남 후보 노무현 대통령도 만들어보고 했는데, 조금만 지나면 또 호남에 갇히곤 했다. 호남뿐인가. 386정권론에도 갇히고 종북좌파 정권론에 갇히고 보수 진영이 우리에게 던지는 올가미에 계속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뚫고 나아가려면 낚시터로 치면 자꾸 포인트를 바꾼다고…, 아니다.”
-말을 왜 하다 마나?
“내가 비유로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포인트 바꾼다고 고기가 무는 거 아니다’, 이 말 하려고 한 것 아닌가?
“국민을 고기로 비유하는 건 좋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어쨌든 국민이 원하는 건 유리하든 불리하든 꾸준히 소신대로 하는 것이다. 민주당 구성원 스스로 줏대있게 정치를 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호남정권론이든, 종북좌파정권론이든 그런 식의 올가미에 갇혀 당이 분열되는 상황을 막아낼 것이다.”
-그래서 최근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게 민주당 입당을 권유한 것 같은데, 안 의원은 10월 재보궐선거에서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겠다고 했다. 안 의원의 선택이 옳다고 보나?
“지난 대선에서도 힘을 모았으니 정치를 한다면 함께 힘을 모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 의원도 이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안 의원을 좋아해서 ‘정치 같이 하자’, 이런 것이었다.”
-안 의원은 그런 ‘구애’를 외면한 것 아닌가?
“그거야 뭐, 나야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안 의원 본인은 새로 당을 만들어서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장차 서로 힘을 합치게 될 것이다.”
-민주당 입당 방식과 지난 대선 때 시도했던 후보 단일화 방식은 다른데?
“내가 민주당에 24년째 몸담으면서 최고위원까지 지냈고, 지금도 당원으로 있는데 나로서는 당연히 우리 당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거지, 내가 간다고 하나. 안 의원이 대한민국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내가 솔직히 잘 모른다. 서로 이야기를 좀더 모아봤으면 좋겠다. 정치를 한다는 건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보겠다는 건데,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맞다면 같이하는 거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의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까지 나온 상황인데, 이를 어떻게 보나?
“일단 박원순 시장께 축하드린다. 원래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시절부터 정보기관이 제거하려 했던 지도자는 늘 위대한 지도자로 발돋움했다.(웃음) 그런 걸로 민심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데 길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권력기관이 대통령의 통치력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아주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위대한 지도자를 단련시켜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께 꼭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며 대통령이 국정원장 독대까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5년 만에 국정원이 스스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여론조작에 투입된 국정원 구성원 스스로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소 애매한 경계에 놓고 작업을 시키지 않았겠나. 국정원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종북좌파’라는 내용의 안보 동영상을 배포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주요 쟁점인 에프티에이 문제에 대해 ‘야당 주장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식의 동영상을 선거 기간 내내 틀은 것이다. 이런 공공연한 선거개입은 명백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 구성원들은 북한 정권이 이런 식으로 남한 정권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비극이 따로 없다.
“그게 비극인 거다. 국가의 대표적 권력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내부로부터 시민의 상식에 기초한 문제제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북한에 대한 안보 및 반공이데올로기가 이를 가로막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국가정보원장 등 정보기관장의 대통령 독대보고는 역대 정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보고를 받자니 정보기관의 민간 부문 사찰을 사실상 허용한다는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고, 보고를 끊자니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 핵심 정보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다수 대통령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이유로 전자를 선택했다. 이를 전격 폐지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2003년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그런 보고는 내가 재임하는 한 절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년 재임기간 내내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은 물론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으로부터 단 한번도 독대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후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의 최측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통해 국정원이 수집한 각종 정보를 독대보고 받았다.
민주당 구성원 스스로
줏대있게 정치해야 한다
앞으로 호남정권론이든,
종북좌파정권론이든
그런 식의 올가미에 갇혀
당이 분열되는 상황 막겠다 박원순 시장께 축하드린다
원래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정보기관이 제거하려 했던
지도자는 늘 위대하게 됐다
길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을… 국민은 ‘땅 위의 사람들’…대권 도전 안 피할 것 -안 지사도 이제 곧 취임 3년을 맞는다. 직접 도정을 운영해보니 어땠나? “도민의 높은 기대와 요구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로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못해서 늘 미안하다. 다만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든 도민에게 공정한 도청, 그런 도정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다. 법과 제도 앞에 모든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24년 정치 인생의 상당 기간을 지도자보다는 참모 역할을 하며 보냈다. 참모의 길과 지도자의 길은 어떻게 다르던가? “내가 과거에 알던 정치는 역사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갖고 그 소신에 입각한 지지자를 결집시켜 사악한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참여정부 시절과 도지사를 거치면서 느낀 것은 국민은 원래 네 편 내 편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모두 ‘땅 위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건 도지사 되고 나서 조금 더 넓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안희정 지사가 자신의 ‘두번째 패배’로 기억하는 사건은 1988년 벌어졌다. 당시 그는 고대 안에 난립했던 14개의 운동권 서클을 해체해 단일한 지하조직, 애국학생회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대에는 구국학생연맹이, 연세대에는 반제학생동맹이 꾸려졌다. 그리고 각 대학의 통합 서클조직을 전국 대학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1987년 출범한 반미청년회였다. 반미청년회는 곧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회(전대협)로 발전했다. 운동권에서는 반미청년회 조직을 만든 안 지사를 ‘전대협의 대부’로 불렀다. 전대협 출범 이듬해인 1988년 그는 반미청년회 사건(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 혐의)으로 검거됐다. 서울 남산(안전기획부 조사실)으로 끌려간 안 지사는 한달간 구타와 고문을 당하며 학생운동 지도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같이 활동했던 동지 두세명의 실명을 자백하고 말았다. 스스로 처절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패배해버린 것이다.”(안희정, <담금질> 58쪽) 그때 안 지사는 “앞으로는 능력이 딸리고, 준비가 안 된 자리는 절대 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지도자나 주역이 아닌 ‘후방 조력자’, ‘협력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출마로 후방 조력자가 아닌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계기를 물었다. 그는 그럴듯한 대답 대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할 건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말을 아끼고 있다. 앞으로도 도지사로서 계속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데 출마 여부를 밝히면 공정한 도정을 이끄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럴 줄 알고 이 질문을 준비했다. 대권에 대한 도전은 준비하고 있나? “내가 감히 다음 대권 도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내 처지를 보면 내가 앞서 말한 주요 의제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자신감있게 ‘이렇게 가봅시다’ 하는 확신과 그만한 역량이 생긴다면, 또 그런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진다면 당연히 그건 해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한 해법도 그렇고, 많은 청년 실업자와 은퇴자가 ‘내게도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에 관한 완전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해봅시다’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는 것, 그 정도가 지도자의 몫 아닌가. 어떻게 해법까지 직접 다 내놓을 수 있나? “그렇다.(웃음) 내가 지금 거기까지는 왔다. 문제의식만 분명하다면 해법은 많은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의식이 포함해야 할 철학적 가치만큼은 지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국민,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형성된 철학과 소신이 없는 지도자라면 국가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홍성/최성진 기자 csj@hani.co.k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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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공격해서 덕보려는
정치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못난 후손의 전형 “안희정 당신은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해달라.” ‘친노와 비노’, ‘참여정부의 공과’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간 뒤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렇게 말을 잘랐다. 안 지사는 ‘노무현’으로부터 ‘안희정’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인간적 의리와 도리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 안희정’으로서 “대한민국이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뛰어넘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5월23일)를 맞아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안희정 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자신을 가리켜 ‘노무현의 적자’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봉건시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표현이 너무 안 좋다”는 말도 했다. 안 지사 인터뷰는 충남도청 새 청사에서 약 2시간30분간 진행됐다. 안 지사는 내년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나설 것인지 묻자 “말을 아끼겠다”고 대답했다. 2017년 대권 도전에 대해서는 “그만한 역량과 기대가 모인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갑을관계에도 역사는 전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에 대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소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야 기분좋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노 대통령이 공적 업무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말씀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정쟁과 싸움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났다는 해방감의 표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을 온전히 기념할 수 있게 그분을 역사 속으로 잘 놓아드렸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역사 속에 놓아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건가? “그렇다. 아직도 보수 진영의 많은 분들은 친노-비노 프레임을 이야기하며 이를 통해 우리 쪽을 분열시키려 하는데, 사실 이런 공격이나 과거 민주당을 호남정권이라고 공격했던 것이나 지나치게 정략적·정파적 논리다. 지난 5·4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많은 분들이 모두 김대중-노무현을 잇겠다고 선언했는데도 굳이 친노-비노를 가른다.”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도 있을 텐데?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은 각각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각각 단독정부 수립과 국가적 경제부흥전략 추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랐다. 다만 두분 모두 집권 말기 부정선거 등 선거제도 무력화나 유신헌법을 통한 장기집권 획책 등의 오점도 남겼다. 그 뒤 김대중 정부는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책무를 잘 마무리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시대적 과제는 특권과 반칙 청산이었다. 노무현은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특수한 권력 및 신분을 용납하지 말라는 시대적 요구를 성실히 받든 대통령이었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 등을 통해 드러난 갑을관계의 폐해를 보면, 특권과 반칙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볼 때 그건 지나친 자학이다. 대한민국은 잘 전진하고 있다. 물론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가,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가, 이렇게 따지면 아직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억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록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떠올리듯, 특권과 반칙이 여전할 때 우리는 노무현을 떠올리지 않나. 특권과 반칙 청산이라는 가치를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한 노 대통령의 민주주의적 리더십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마다 우리 사회의 꼭 필요한 가치로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전진하고 있다’는 말은 공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고통과 과제가 없는 시대는 없다. 오늘 청소했다고 내일은 청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질곡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조금씩 진전된 과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내하청의 문제,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조리한 갑을관계의 문제보다 더 큰 기득권 질서와 싸워야 했다. 예전에 갑을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면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겠지만 이제는 ‘그건 옳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역사의 진전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이 된 분이라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 진보와 보수, 여와 야 등으로 끊임없이 편가르기 했다는 지적을 일부로부터 받기도 한다. “노무현 리더십을 편가르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 대통령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한 지점은 정말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과거 노 대통령이 군 장성에게 아주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 똥별들만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당사자로서는 굉장히 마음 아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대한민국을 위해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 아니었나. 자주국방을 외친 지가 언제인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한미연합 전력에 계속 의존해야 하나.” -1980년대 운동권 시절, 안 지사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렇지 않나. 아무리 바람직하고 옳은 가치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당위성만 강조하면 안 된다. ‘불통’은 그래서 빚어지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그분을 모셨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담히 하기란 참 쉽지 않다. 다른 분들이 그런 평가를 하면 나도 ‘맞아, 그분 리더십에서 그런 건 부족했어’ 이렇게 회상하게 된다. 그걸 내가 직접 대답하기는 참 마땅치 않다.”
2009년 5월29일 서울 경복궁 뜰에서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앞줄 가운데) 등이 침통한 표정으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4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친노’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용섭 후보(왼쪽)는 김한길 새 대표에게 큰 차이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고양/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줏대있게 정치해야 한다
앞으로 호남정권론이든,
종북좌파정권론이든
그런 식의 올가미에 갇혀
당이 분열되는 상황 막겠다 박원순 시장께 축하드린다
원래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정보기관이 제거하려 했던
지도자는 늘 위대하게 됐다
길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을… 국민은 ‘땅 위의 사람들’…대권 도전 안 피할 것 -안 지사도 이제 곧 취임 3년을 맞는다. 직접 도정을 운영해보니 어땠나? “도민의 높은 기대와 요구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로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못해서 늘 미안하다. 다만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든 도민에게 공정한 도청, 그런 도정을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다. 법과 제도 앞에 모든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24년 정치 인생의 상당 기간을 지도자보다는 참모 역할을 하며 보냈다. 참모의 길과 지도자의 길은 어떻게 다르던가? “내가 과거에 알던 정치는 역사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갖고 그 소신에 입각한 지지자를 결집시켜 사악한 사람과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참여정부 시절과 도지사를 거치면서 느낀 것은 국민은 원래 네 편 내 편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모두 ‘땅 위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건 도지사 되고 나서 조금 더 넓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안희정 지사가 자신의 ‘두번째 패배’로 기억하는 사건은 1988년 벌어졌다. 당시 그는 고대 안에 난립했던 14개의 운동권 서클을 해체해 단일한 지하조직, 애국학생회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대에는 구국학생연맹이, 연세대에는 반제학생동맹이 꾸려졌다. 그리고 각 대학의 통합 서클조직을 전국 대학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1987년 출범한 반미청년회였다. 반미청년회는 곧 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회(전대협)로 발전했다. 운동권에서는 반미청년회 조직을 만든 안 지사를 ‘전대협의 대부’로 불렀다. 전대협 출범 이듬해인 1988년 그는 반미청년회 사건(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 혐의)으로 검거됐다. 서울 남산(안전기획부 조사실)으로 끌려간 안 지사는 한달간 구타와 고문을 당하며 학생운동 지도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같이 활동했던 동지 두세명의 실명을 자백하고 말았다. 스스로 처절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패배해버린 것이다.”(안희정, <담금질> 58쪽) 그때 안 지사는 “앞으로는 능력이 딸리고, 준비가 안 된 자리는 절대 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지도자나 주역이 아닌 ‘후방 조력자’, ‘협력자’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출마로 후방 조력자가 아닌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계기를 물었다. 그는 그럴듯한 대답 대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충남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할 건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말을 아끼고 있다. 앞으로도 도지사로서 계속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데 출마 여부를 밝히면 공정한 도정을 이끄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답변은…” -그럴 줄 알고 이 질문을 준비했다. 대권에 대한 도전은 준비하고 있나? “내가 감히 다음 대권 도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 내 처지를 보면 내가 앞서 말한 주요 의제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자신감있게 ‘이렇게 가봅시다’ 하는 확신과 그만한 역량이 생긴다면, 또 그런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진다면 당연히 그건 해야 한다. 그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충분한 자신감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한 해법도 그렇고, 많은 청년 실업자와 은퇴자가 ‘내게도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에 관한 완전한 해법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해봅시다’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는 것, 그 정도가 지도자의 몫 아닌가. 어떻게 해법까지 직접 다 내놓을 수 있나? “그렇다.(웃음) 내가 지금 거기까지는 왔다. 문제의식만 분명하다면 해법은 많은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의식이 포함해야 할 철학적 가치만큼은 지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국민,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형성된 철학과 소신이 없는 지도자라면 국가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홍성/최성진 기자 csj@hani.co.k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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