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검증]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문제가 뭐기에
불법 도·감청 파문 이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여야 의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현행 통비법이 감청(통신제한 조처)의 범위와 대상 범죄를 지나치게 막연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권력기관이 ‘끼워넣기’ 등의 수법으로 무분별한 감청을 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허용 범죄유형 100여가지 막연하고 포괄적
긴급감청 법원 사후보고 안해도 적발 어려워
‘공익차원 내용 공개 불처벌’ 등 법개정 목청 특히 최근 정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이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합법감청이 가능하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감청의 대상과 범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권력기관 감청=통비법은 원칙적으로 특정한 범죄의 수사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만 감청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감청을 허용하는 범죄의 유형이 무려 100여가지에 이르러, 감청을 특정 범죄로 한정한 입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통비법은 또 예비음모에 대해서도 감청을 허용하고, 감청 요건도 ‘국가 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와 함께 ‘긴급한 사유가 있는 경우’ 법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긴급감청’ 조항도 감청 남용을 유발하는 요소로 꼽힌다. 물론, 긴급감청을 하면 법원에 사후보고를 하도록 돼있지만, 수사기관이 보고를 하지 않으면 이를 적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간사는 “현행 통비법은 감청을 허용하는 범죄의 대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사실상 모든 범죄에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며 “통비법을 개정해 감청을 허용하는 범죄의 유형과 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도 “일본의 경우 총기밀매, 조직범죄 살인, 집단밀항, 마약밀매 등 네 가지 범죄에 한해 감청을 허용하고 있고, 독일은 예비음모에 대해선 감청을 금지하고 있다”며 “감청 대상 범죄를 국가안보에 관련된 범죄와 마약, 유괴, 테러, 조직범죄 등 중대범죄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도청문제의 핵심이 수사기관의 ‘끼워넣기’ 관행이라고 지적한다. 수사기관이 합법적인 감청 영장을 받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노리는 대상을 몰래 삽입하는 편법적인 수법으로, 사실상 합법감청을 가장한 불법도청인 셈이다. 통비법 개정안 봇물=불법도청을 막기 위한 통비법 손질 작업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23일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으나 통비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며 “공공이익에 관한 것이면 도청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통비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내용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엑스파일’을 공개한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는 처벌을 면하게 된다.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이 낸 통비법 개정안도 권력기관 종사자 등이 불법도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신고할 경우 처벌을 면제받도록 했다.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은 통신기관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내역에 대한 국회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으며,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도 불법도청에 관여한 공직자의 경우 공직 재임기간은 공소시효가 정지되도록 하는 통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도청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력 기관의 감청 남용에 따른 폐해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통비법을 개정해 감청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거나 법원의 통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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