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청와대 앞에서 사흘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현장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21일 오후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등 국기문란 행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입장표명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경찰들이 햇빛 가림막 설치까지 막아, 그는 밀짚모자를 쓰고 땡볕을 견뎠다. 23일 새벽엔 비옷을 입고 폭우도 맞았지만, 청와대는 야당 의원의 주장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단식농성을 23일 저녁 ‘7끼 굶기’로 끝냈다. 먹기를 포기한 결기에 비하면, 때이른 마감이었다. 진보당 쪽은 “국정조사가 끝난 23일 이후 야당·시민단체들이 현 정국을 어떻게 풀지 방안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이 의원의 무기한 농성이 부담을 줄 수 있어 당이 중단을 요청했다”고 했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자, 민주당에선 김한길 대표의 단식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당내엔 장기전에 대비해, 야당 대표의 단식카드를 섣불리 던져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또 지난달 김 대표의 건강을 검진한 병원에서 “이 몸으로는 단식이 어렵다”는 소견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의원들의 릴레이 단식 방안도 나오는 모양인데, 요즘 다이어트로 관심을 끄는 ‘간헐적 단식’(하루 16시간 금식)을 의원들이 돌아가며 하자는 것쯤으로 비칠 소지도 있다.
국내 정치사에서 단식투쟁은 야당의 주장과 국민 여론을 무시하는 대통령과 여당에 맞서 야권이 선택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었다. 1983년 당시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는 민주인사 석방·언론자유·악법개폐 등 민주화 5개항을 전두환 정권에 요구하며 23일간 단식을 해 자신의 가택연금 해제 등을 이끌어냈다. 19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3일 단식은 지방자치 부활로 이어졌다. 단식투쟁을 남발하지 않되, 야권이 더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 ‘결정적 승부수’로 띄운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거리에 천막까지 친 야권 인사들을 밥까지 끊는 극단적 단식투쟁으로 내몬다면, 갈등조정력과 정치력이 떨어졌음을 국내외에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야권의 단기 단식, 릴레이 단식 등은 위험하게 질주하는 여권을 반성과 변화의 길로 끌어내지 못한 채 정치적 이벤트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단식은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을 움찔하게 만드는 효과마저 떨어진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송호진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