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날치기 국회 막자고 법 만들더니
이제와 ‘민주당 태도 따라’ 개정 뜻
이제와 ‘민주당 태도 따라’ 개정 뜻
새누리당은 23일 정기국회 전면 참여를 결정한 민주당이 “강력한 원내투쟁”을 예고하자 국회선진화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며 맞불을 놓았다. 법안 및 예산안 날치기 등을 금지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정기국회가 본궤도에 오르더라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식물 국회’로 전락할 수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대표가 주도해 만든 법안을 스스로 뒤집겠다고 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든 상임위에서 60%의 찬성이 있어야만 법안이 통과되는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에서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으려면 야당의 상식적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가 절실하다”며 “야당이 상생의 선진적인 정치문화 확립을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한다면 그것도 수명을 오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정기국회에서 정부·여당이 원하는 법안과 예산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으면 국회선진화법을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날치기 등 다수당의 횡포를 방지하고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운영을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해 5월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주도해 통과시켰다.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 밖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당내 상당수 의원들이 “다수결 원칙을 무시한 법안으로,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며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반대했지만,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이를 무릅쓰고 법안 통과에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19대 국회부터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천재지변과 전시·사변 및 국가비상사태, 여야 원내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됐고,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국회의원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153석으로 간신히 과반 의석인 새누리당 단독으로는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초 박근혜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됐을 때 새누리당 안에서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정치적 이익에 따라 스스로 만든 법안을 바꾸려 한다는 비판 때문에 공론화에 실패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원외투쟁을 계기로 다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실제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선 국회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황우여 대표가 국회 효율화를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이 법이 국회 활동의 족쇄가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황우여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법안 상정에 너무 시간이 걸리면 국민들이 짜증을 내니까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일부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시도해봤자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힐 게 뻔한 만큼 이 법안이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점을 문제삼아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여야가 만장일치로 합의해 통과시켰고, 대한민국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평가했던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단지 박 대통령에게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개정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무시하는 놀라운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수헌 조혜정 기자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