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대통령 선거 유세현장에서 유권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안산/사진공동취재단
복지 핵심공약들 줄줄이 후퇴·파기…경제민주화는 ‘흔들’
정규직 전환·군복무 단축·방과후 돌봄 등도 ‘없던 일?’
정규직 전환·군복무 단축·방과후 돌봄 등도 ‘없던 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 성적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 출범 7개월여 만에, 지난해 대선 당시 핵심 득표 수단이었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들이 후퇴·포기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노동·교육·지역·국방 등 다른 분야에서도 상당수 공약들이 이미 무산됐거나 무산 위기를 맞고 있다.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던 기초연금 공약은 박 대통령의 핵심적인 복지 공약이었지만, 재정 여건을 이유로 소득 하위 70%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수령액과 연계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정됐다. 기초연금뿐 아니라 4대 중증질환(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에 들어가는 진료비를 국가가 100% 보장하겠다거나 무상보육을 실현하겠다는 복지 공약들도 후퇴 논란을 겪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말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으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가운데 환자들의 부담이 가장 큰 선택진료비(특진비)나 상급병실료(특실료), 간병비에 대한 구체적인 보장안이 빠져 있어 비판을 받았다. 또 4대 중증질환을 모두 건강보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겠다면서도,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진료에 대해서도 환자가 진료비의 50~80%까지 내도록 한 선별급여를 도입하기로 해 이 역시 공약 후퇴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무상보육 역시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분담 비율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돌봄서비스를 2014년부터 연차적으로 확대하겠다던 공약도 예산 확보가 안 돼 성사가 불투명해 보인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회보험을 국가가 100% 지원하겠다던 약속도 국정과제 발표를 통해 50%만을 지원하는 것으로 슬그머니 축소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우선적으로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공약도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시한을 삭제했고, 예산 또한 잡히지 않았다.
경제민주화 공약들도 재계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도입을 통해 총수 전횡을 방지하려는 상법개정안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공약들은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 궤도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무게중심을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활성화 쪽에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공약들도 삐걱거리고 있고, 지방재정을 확충해 열악한 지방정부의 재정 형편을 개선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공약은 공수표가 될 처지다. 지역별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부산을 방문해 해양수산부를 신설하고 청사를 해양수도인 부산에 두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세종시에 청사를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또 박 대통령은 부산을 동북아 물류 허브와 해양수도 건설의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 부산에 두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수출입은행 등 선박금융 관련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해 선박금융지원센터를 만들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사실상 선박금융공사 설립 약속을 백지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방 분야에서는 군복무 기간 18개월 단축 공약 시행이 사실상 물건너갔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 출범 이후 미국에 재연기를 요청하면서 사실상 파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수헌 이형섭 김광수 이정국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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