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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흑색선전’에서 ‘단정 못해’, 이젠 ‘영향 미미’로

등록 2013-10-25 15:18수정 2013-10-25 19:25

‘소가 웃을’ 새누리당의 국정원 ‘대선 개입’ 논평 변천사
벼랑끝 몰리자 ‘대선 불복’ 물타기…박 대통령은 침묵

※이 자료는 클릭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입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거나 ‘민주당의 흑색선전’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대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또는 ‘대선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고 물타기를 한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지난 10개월 동안 수세에 몰리고 있는 새누리당은 말바꾸기를 통해 변신을 거듭해왔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지금은 입을 꾹 닫고 있지만, 지난해 12월11일 서울시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정치 댓글을 달던 국정원 직원이 발각됐을 때는 상당히 거친 말을 쏟아냈다. 국정원 직원 사건이 터지고 3일 뒤인 같은 달 14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대통령은 “도대체 선거가 무엇이고 권력이 무엇이길래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로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급기야는 한 여성을 집에 가둬놓고… (민주당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선거가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허위·비방이 갈수록 도를 넘더니 이제는 국가 기관(국정원)까지 정치 공작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금 민주당 성명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가운데)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대선평가 보고서’를 인용한 손팻말을 보이며 발언을 하다 참석자들과 함께 웃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가운데)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대선평가 보고서’를 인용한 손팻말을 보이며 발언을 하다 참석자들과 함께 웃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그러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자 박 대통령은 지난 8월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고, 활용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일보>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혼외 아들’ 의혹 제기가 국정원 수사에 대한 청와대와 법무부의 외압 논란으로 번지자 지난 9월16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과의 3자 회담에선 “국정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게 없고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대통령이 일일이 사과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해선 암묵적 시인을 하면서서도 ‘본인은 결백하다’며 선을 그은 것이다.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들이나 여권의 발언 변천사를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발언 기조 변화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 국정원 직원이 발각된 때로 다시 돌아가면, 국정원은 사건 당일 바로 보도자료를 내어 “민주당이 주장하는 역삼동 오피스텔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 거주지인데,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개인의 사적 주거공단을 무단 침입해 정치적 댓글 활동 운운했다. 이는 사실무근이며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지금 다시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는 얘기다.

새누리당도 적극 가세했다. 새누리당에서 급조한 ‘문재인캠프 선거공작 진상조사특위원장’의 위원장인 심재철 의원은 12월14일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아무런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헌정 사상 최악의 선거 부정 음모 사례가 될 것이다. 문 후보는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후보직을 사퇴해야 하는 일이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지난 4월18일 서울 수서경찰서가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 직원 김씨 등 3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자 새누리당의 입장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날 이철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국정원) 직원 김씨 등이 정치에 개입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문제와 무관하게 야당이 김씨를 감금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사실 무근’에서 ‘단정할 수 없다’로 살짝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이 꾸려지고,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이끄는 특별수사팀은 6월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뜻과는 배치된 결과였다.

이쯤되자 다음날인 15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주당은 분명히 대선에 대해 불복이라면 불복이라고 입장을 밝혀라.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실 자체를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야당에 ‘대선 불복’ 프레임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대선 불복’ 프레임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조차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특히, 국정원 수사팀장을 맡다가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국정감사에서 외압 의혹을 털어놓으면서, 새누리당은 두 갈래로 대응하고 있다. 첫번째는 ‘대선 불복’ 틀을 유지하되, ‘악마’ 따위와 같은 더욱 날선 언사로 포장하는 것이다. 최경환 원내 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상황점검회의에 참석해 “대선 불복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게 내미는 손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 발언이 단적인 사례다.

두번째는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침소봉대’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0월23일 “국정원 대선 개입이라는 55000여건의 트윗글은 국내에서 4개월 생산되는 트윗글 2억2800만개 중 0.02%에 불과하다. 미미한 수치로 조직적 개입이라고 한 건 침소봉대”라고 주장했다. 이 두 프레임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국정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은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대선 결과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정권 일을 수사하는 것에 대해 왜 현 정권이 외압을 가하고 있는지, 대선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데도 왜 국가기관들이 동원됐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가장 큰 변화는 ‘감금’됐다던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운운하는 사람이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시사게이트] 박근혜 ‘댓통령’ 만든 ‘댓글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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