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선물·금품·음식물 제공 기준 공개
2009년 1월.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재선의원의 부인이 설을 앞두고 유권자 100여명에게 멸치상자를 하나씩 돌렸다. 2만9천원짜리 멸치의 위력은 대단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부인에게 대법원은 벌금 500만원을 확정했다. 남편인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출마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6·4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나 유권자 모두 들뜨기 쉬운 설 명절이다. 대보름에 무심코 받아든 호두나 땅콩 몇 개를 50배로 토해내야 한다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극장 관람 뒤 아이들에게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리라”고 했다는 영화 <넛잡>에서처럼 ‘땅콩 도둑’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설을 앞둔 29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선물·금품·음식물 제공과 관련한 기준을 공개했다. ‘명절 인심 좀 쓸 수 있지’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자칫 과태료 폭탄을 맞을 수도 있으니 모두들 주의가 필요하다.
공직선거법은 설·대보름 등을 맞아 명절인사와 세시풍속을 ‘빙자’한 선물·금품·음식물 제공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관내 경로당·노인정에 설맞이 인사를 빈손으로 가기는 그렇다며 사과상자를 번쩍 들고간다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술인심 한번 쓰겠다며 관내 통장이나 이장에게 차례용 술을 한 병씩 돌리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동네에서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흥에 겨워 그만 주민들 놀이마당에 음식물과 상품을 무심코 제공했다가는 이 역시 큰코 다친다. 선거구민 등에게 귀향·귀경버스를 제공하거나, 애타고 목타는 귀성객들에게 음료를 제공해도 선거법에 걸린다.
지방선거 입후보예정자의 금품·음식물 제공 행위가 이같이 깨알처럼 금지된다면, 이를 무심코 받는 유권자들의 행위에도 동일하게 처벌이 따른다. 공직선거법은 받은 금품의 최대 50배까지 유권자가 토해내도록 하는 무서운 조항을 품고 있다. 반면 받는 즉시 이를 신고할 경우 과태료 감면조치와 함께 포상금을 받게 된다.
공직선거법의 명절 인심이 그저 박한 것만은 아니다. 선거법에는 명절을 맞아 선물·음식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선거구내 전·의경이나 군부대를 방문해 위문금품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소속정당이나 이름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선거구내 장애인단체 등이 주최하는 행사에 후원금품을 기부하는 것도 허용된다. 선거구민이 아닌 사람에게 의례적인 범위의 명절 선물까지 주는 것은 막지 않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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