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과거 이제는 말해야 한다
재심개시 문턱 낮춰 ‘잘못된 판결’ 바로 잡아야
대법원장 직속위원회 구성-특별법 검토 주문도
“선배들의 잘못을 우리더러 언제까지 떠안고 가라는 겁니까?”
어느 젊은 법관의 하소연이다. 그는 ‘반성할’ 때를 놓치면 놓칠수록 국민의 사법 불신은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 대법원장 취임을 계기로, ‘부끄러운 과거’를 확실히 털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법원 안팎의 목소리도 높다.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가 7~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많을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는 이유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사청문회나 취임 때 총론적인 언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발언의 수위나 과거사 문제해결 방법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
일차적인 관심사항은 최근 잇따르는 재심청구사건이다. 법원 안에서는 “재판을 잘못한 ‘죄’는 재심을 통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많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나 조작간첩 함주명 사건이 그 예다. 하지만 법원의 재심개시 문턱은 매우 높다.
1980년 “조총련 간부인 형의 지시에 따라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했다”는 이른바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15년을 복역한 신귀영씨. 94년 “조총련 간부도 아니고 간첩행위를 지시하지도 않았다”는 형의 진술서를 새롭게 받아 재심을 청구했고 1·2심에서 이겼지만, 대법원이 “진술서만으로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없고, 고문·감금행위도 별도의 확정판결이 없다”며 퇴짜를 놨다. “촬영장소라고 증언된 곳에 도로조차 없었다”며 낸 2차 재심청구도 대법원은 기각했다.
이는 대법원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제420조 제5호)’ 또는 ‘검찰·경찰의 직무상 범죄가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제420조 제7호)’라는 형사소송법의 재심개시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지난 대부분 시국사건은 재심대상에도 오를 수 없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이 “(재심사건들을)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론적인 견해라도 밝혀, 인혁당 재심사건 등 ‘숙제’를 안고있는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예 형사소송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판’이라는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문도 있다. 조용환 변호사는 “외부에 떠밀리기보다, 법원이 독립성을 지키며 자발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금까지 사법부가 왜 이런 잘못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법원장이 구조적인 문제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장 직속위원회나 별도의 팀을 꾸려,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자기고백 형식의 새로운 법원사를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과거청산은 사학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지, 법관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법원 안의 반발이 많다. 이헌환 서원대 교수는 “과거 잘못을 저지른 판사들이 이미 물러났다는 이유로 사법부가 면책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앞으로 사법부 6년을 좌우할 대법원장이 과거청산에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자기고백 형식의 새로운 법원사를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과거청산은 사학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지, 법관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법원 안의 반발이 많다. 이헌환 서원대 교수는 “과거 잘못을 저지른 판사들이 이미 물러났다는 이유로 사법부가 면책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결국 앞으로 사법부 6년을 좌우할 대법원장이 과거청산에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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