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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한겨레 프리즘] 그 사람 손학규 / 이유주현

등록 2014-08-03 18:26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벌써 5년 전 일이다. 흐린 어느 겨울날, 춘천에 갔다. 2008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춘천에 칩거 중인 손학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의 한 측근이 사전에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은 터였다. 야권의 대선주자군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정치 복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춘천으로 간 뒤 모든 인터뷰를 사양하던 그를 만나게 돼 기대가 컸다. 포장 안 된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찾아갔으나 그는 없었다. 몸뻬바지를 입은 부인 이윤영씨는 “산에 가셨어요”라며 미안해했다. 차 한잔 얻어 마시며 몇 시간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아직 언론에 나서고 싶지 않았던 손학규와 인터뷰를 주선한 측근 사이에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은 듯했다. 이유야 어쨌든 속상했다.

이듬해 그는 여의도로 돌아왔다. 기자들 수십명과 첫 상견례를 하는 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유주현 기자님, 그때 춘천에서 정말 미안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사과를 받고 나니 화가 풀렸다.

2년 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화두를 들고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2007년에 이어 두번째 고배를 마셨다. 올해 수원 팔달 보궐선거에선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에게 패했다.

7·30 재보선이 야당의 참패로 끝난 1일 아침,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곧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 대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김한길 대표만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마저도 본론만 간단히 밝힌 뒤 쏜살같이 회견장을 떠났다.

두 사람이 물러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학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측근들은 눈물바람이었으나 그는 의연했다. 다만,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할 때는 정말 안타까운 기색이었다. 회견문을 읽고 몇가지 질문을 받은 뒤 기자실을 돌며 작별인사를 했다. 악수를 나누는데, 갑자기 5년 전 일을 꺼냈다. “그때 춘천에서 헛걸음하게 만든 거 정말 미안합니다.” 정작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는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따로 전화 통화를 했다. 승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도의 대구’라는 팔달에 출마한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손학규의 시대가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 거 같았다. 그러나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손학규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평생 선거운동을 이번처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빛나던 자신의 시절이 저물어간다는 걸 감지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삶을 계속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날 때에도 ‘나만은 정치를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두어 달 전 나는 동료 몇몇과 함께 그와 저녁을 먹었다. 술이 몇순배 돌았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젓가락을 두드리며 ‘저녁이 있는 삶’을 노래했다. 가사가 좋았다. “너의 기쁨 슬픔은 나의 기쁨과 슬픔”이란 대목에선 마음이 뭉클했고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자”는 후렴구는 같이 따라불렀다.

손학규는 ‘손학규의 시대’에 ‘저녁이 있는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그 꿈을 꼭 이어받으면 좋겠다. “여전히 별은 빛나고 태양은 뜨겁다”는 건축가 서현의 말처럼,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절망은 여전하고, 삶의 질에 대한 갈망과 연대의 희망은 여전하기에.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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